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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04 조회수1,416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년 11월 4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제1독서 로마

11,1ㄴ-2ㄱ.11-12.25-29

형제 여러분,

1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벤야민 지파 사람입니다.
2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11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걸려 비틀거리다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으로

다른 민족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이 다른 민족들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12 그런데 그들의 잘못으로

세상이 풍요로워졌다면,

그들의 실패로 다른 민족들이

풍요로워졌다면,

그들이 모두 믿게 될 때에는

얼마나 더 풍요롭겠습니까?
25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를

알아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신비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부가 마음이

완고해진 상태는 다른

민족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어지고

26 그다음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

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시온에서

구원자가 오시어 야곱에게서

 불경함을 치우시리라.

27 이것이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 그들과

 맺어 줄 나의 계약이다.”

28 그들은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루카 14,1.7-11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2015년에 저는 1년간의

 안식년을 보냈습니다.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한 아파트에서 혼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저의 시간표 중에 하나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다음,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각종 쓰레기들을

버리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자주 쓰레기봉투를

들고서 나타나는 바로 옆집

형제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가정적이시네요.

이렇게 아내를 도와서 쓰레기도

 버리시니 까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웃으면서 안 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시네요.

아내가 이런 식으로

부탁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보, 지금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쓰레기도 버려야 하거든.

이 중에서 한 가지만 좀

해주면 안 될까?”
남편은 여기서 무엇을

선택한 것일까요?

설거지나 청소보다는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쓰레기 버리는 것이 쉬워서

이렇게 자주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아내가 참으로 현명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요.
“설거지 해줘!”, “청소해줘!”,

“쓰레기 버려줘!”라는 명령조의

말을 들으면 어떨까요?

 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별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거나,

구시렁대면서 마지못해

하는 모습이 되지요.

이 모습이 바로 싸움의

원인이 됩니다.

남편은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또 아내는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고 해서

다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선 아내의 말처럼

이야기했다면 어떠했을까요?

남편의 입장에서 무시당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고,

또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아무 말 하지 않고

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존중을 받게

되면 결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남을

존중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인이 원하는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동시에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윗자리에 앉으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하시지요.

오히려 가장 낮아 보이는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존중받으려고만

사는 모습이 아니라,

존중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윗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동반자로서 존중하고 인정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남을 존중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윗자리가 아닌 끝자리를

찾아가는 모습,

즉 존중받으려는 삶보다는

존중하는 삶이 자신을

진정으로 높여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보라.

 예상치도 않았던 힘이

솟아나게 될 것이다.

(빅터 프랭클)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회사에게 큰 인정을 받고 있는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받을만한

위치에 오르기까지 모든

노력을 기울이면서 일했습니다.

이렇게 일하는 이유는 자신의

가족이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하곤 했지요.

특히 사랑하는 딸에게

존경받는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더 열심히

일에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경제적

어려움 없이 편하게

생활하는 것이고 이러한 자신을

충분히 이해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우연히 딸이 적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 22개’라는

 목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목록에는 생일파티,

학교공연, 졸업식 등이

적혀 있었지요.

하지만 이 목록에 아빠

자신이 하나도 있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신을 이

해할 줄 알았는데,

딸에게는 아예 목록에 빠져버린

존재감 없는 아빠였던 것이지요.
사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가질 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얻으면 또 반대로

무엇인가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도 얻고

또 주님의 사랑도

얻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랑을

얻기 위해서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야 가장 큰 가치인 주님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가치를 따라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세상의 가치와

주님의 가치 중에서 무엇을

더 크게 여겨야 할까요?

아이들과 놀 때 행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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