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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매일묵상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04 조회수1,374 추천수3 반대(0) 신고

 

양떼의 아픔이 곧 목자의 아픔임을...



2천년 교회 역사 안에서 늘 강조되어온 주된 성찰거리 하나가 있었으니, 변화와 성장을 위한 쇄신 작업이었습니다. 중요한 전환기 때마다 역대 교황님들께서 소집하셨던 공의회나 요즘 몇몇 교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시노드는 바로 자정(自淨)과 쇄신을 위한 좋은 예라고 볼수 있습니다.

 

공의회나 시노드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님(1538~1584)입니다. 그는 제대로 된 ‘금수저’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삼촌이 교황 비오 4세였습니다. 밀라노 대교구장에 임명된 그는 교황님의 당부에 따라 교회의 쇄신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

무엇보다도 가롤로 주교님은 트리엔트 공의회 개최에 크게 기여함을 통해 교회 쇄신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자연스레 그의 명성은 커져만 갔고, 교회 내에서 그는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되었습니다. 교황 비오 4세가 선종하자, 그는 강력한 차기 교황 후보로 부각되었지만, 극구 사양한 후 신속히 밀라노 대교구로 복귀했습니다.

 

가롤로 주교님은 당시 교회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했습니다. 그는 교회 쇄신의 첫 출발점은 사제들의 회개요 재교육임을 확신했습니다. 그에 따라 양질의 사제 양성소를 건립하였습니다. 틈만 나면 교구 회의를 소집하여 사목자들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교구장으로서 교구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사목방문을 강화했습니다.

 

주교좌 성당 안에 있던 화려한 무덤들과 장식품들을 사치로 규정하여 철폐하였습니다. 교구 수도단체를 활성화시키는가 하면, 평신도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고자 주일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밀라노 대교구의 이런 쇄신 작업은 자연스레 주변 다른 교구와 보편 교회 전체로 퍼져갔습니다.

 

가롤로 주교님의 생애가 위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삼촌 교황님을 모셨으며, 콘클라베에서 강력한 차기 교황으로 추대되기도 했지만, 단 한치라도 권력을 탐한다거나 남용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당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명가(名家)에다 ‘금수저’ 출신이었지만, 언제나 극단적 겸손과 청빈의 삶을 추구했습니다.

 

흑사병으로 인해 당시 사회 전체가 큰 위기 상황에 처했을때, 가롤로 주교님은 주교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용감하게 현장으로 달려나오셨습니다. 사회의 고통이 곧 교회의 고통임을, 양떼의 아픔이 곧 목자의 아픔임을 온 몸으로 느꼈습니다.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흑사병 퇴치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당시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수만명에 이르렀습니다. 당대 지도층 인사들과 귀족들은 목숨이 두려워 죄다 떠나가고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롤로 주교님은 끝까지 밀라노에 남았습니다.

 

전염의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병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위로하며 병자성사를 주었습니다. 건강한 청년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매장했습니다. 흑사병으로 인해 밀라노 시민 전체가 극단적 기아에 시달릴 때, 그는 매일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식량조달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가롤로 주교님은 백성들의 참 지도자, 양떼들의 참목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처신해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명명백백하게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분의 생애를 묵상하다보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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