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71105 - 가해 연중 제31주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05 조회수1,47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11 05 () 가해 연중 제31주일 복음 묵상

Thirty-first Sunday in Ordinary Time

말라키서 1,14-2,2.8-10
테살로니카 12,7-9.13
마태오복음 23,1-12

 

-------------------------------------------------

 

 

1독서


▥ 말라키서 1,14-2,2.8-10

14
정녕 나는 위대한 임금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민족들은 나의 이름을 경외한다.
2,1
자 이제, 사제들아, 이것이 너희에게 내리는 계명이다. 2 너희가 말을 듣지 않고, 명심하여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겠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8
그러나 너희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하였다. 너희는 레위의 계약을 깨뜨렸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9
그러므로 나도 너희가 온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리라. 너희는 나의 길을 지키지 않고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10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한 분이 아니시냐?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셨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서로 배신하며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더럽히는가?


Reading 1


Mal 1:14b-2:2b, 8-10 

A great King am I, says the LORD of hosts, and my name will be feared among the nations.
And now, O priests, this commandment is for you:
If you do not listen, if you do not lay it to heart, to give glory to my name, says the LORD of hosts, I will send a curse upon you and of your blessing I will make a curse.
You have turned aside from the way, and have caused many to falter by your instruction; you have made void the covenant of Levi, says the LORD of hosts.
I, therefore, have made you contemptible and base before all the people, since you do not keep my ways, but show partiality in your decisions.
Have we not all the one father?
Has not the one God created us?
Why then do we break faith with one another, violating the covenant of our fathers?


 

-------------------------------------------------

 

 

2독서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2,7-9.13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8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Reading 2


1 Thes 2:7b-9, 13

Brothers and sisters:
We were gentle among you, as a nursing mother cares for her children.
With such affection for you, we were determined to share with you not only the gospel of God, but our very selves as well, so dearly beloved had you become to us.
You recall, brothers and sisters, our toil and drudgery.
Working night and day in order not to burden any of you, we proclaimed to you the gospel of God.

And for this reason we too give thanks to God unceasingly, that, in receiving the word of God from hearing us, you received not a human word but, as it truly is, the word of God, which is now at work in you who believe.


 

-------------------------------------------------

 

 

복음


? 마태오복음 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Gospel


Mt 23:1-12

Jesus spoke to the crowds and to his disciples, saying, "The scribes and the Pharisees have taken their seat on the chair of Moses. Therefore, do and observe all things whatsoever they tell you, but do not follow their example.
For they preach but they do not practice.
They tie up heavy burdens hard to carry and lay them on people's shoulders, but they will not lift a finger to move them.
All their works are performed to be seen.
They widen their phylacteries and lengthen their tassels.
They love places of honor at banquets, seats of honor in synagogues, greetings in marketplaces, and the salutation 'Rabbi.'
As for you, do not be called 'Rabbi.'
You have but one teacher, and you are all brothers.
Call no one on earth your father; you have but one Father in heaven.
Do not be called 'Master'; you have but one master, the Christ.
The greatest among you must be your servant.
Whoever exalts himself will be humbled; but whoever humbles himself will be exalted."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11 05일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말라키서 1,14-2,2.8-10
테살로니카 12,7-9.13
마태오복음 23,1-12


오늘날 지도자들의 사명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에 주님께서는 제1독서를 통해 경고하십니다. “사제들아, …… 너희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하였다.” 당시 사제들은 민중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형식주의에 물들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조심하라고 이르십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형제가 되려면 모든 차별을 없애야 합니다. 옷차림으로 다른 이를 차별한다면 오히려 옷의 노예가 됩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차별한다면 이웃은 없어지고 재물만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리사이들은 다른 이들과 차별된 행동을 하며, 자신을 과시하기에 여념이 없었지요.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물론 그들은 주님을 찬미하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였을 것입니다.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매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니며 묵상하기 위함이라고 항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과 벽을 만드는 행위였습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순간마다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결정을 내리도록 식별 능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의 역할과 소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1030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지혜서 11,22-12,2
테살로니카 2 1,11-2,2
루카복음 19,1-10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자캐오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르시며 마침내 완성하고자 하시는 구원 업적의 예표와도 같이 묘사됩니다. 유다인들의 선민의식은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율법 규정에 따라 철저하게 지켜지고 강조되었습니다. 율법에 어긋나는 삶을 살거나,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은 아예 이방인 취급을 받았고, 하느님의 구원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자캐오가 로마의 지배하에 세금 징수 업무를 위임받아 제국의 압제자 노릇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가 받은 멸시와 비난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민족에게서 외면당한 자캐오라고 해서 위대한 예언자, 메시아로 칭송받던 예수님을 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비록 먹고살려고 지배 세력에 협력하고 있지만, 그 불편한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냥 예수님을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무화과나무에 올라 자신을 쳐다보는 자캐오의 속마음을 읽어 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내려오라’는 말 속에는 그의 욕심, 자책감, 상처를 버리라는 요청이 들어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죄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집에 머물기까지 하십니다.
구원은 바로 이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사건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했듯이, 그토록 소중한 재산을 내어놓겠다고 선언하는 자캐오의 마음에는 주님의 ‘불멸의 영’이 살아 있었고, 그 영을 일으켜 주신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오늘’ 구원을 선포하고,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선언하십니다. 자비는 이렇게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선 하느님의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101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모든 성인 대축일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1102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위령의 날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103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 기념일)

지혜서 11,22-12,2
테살로니카 2 1,11-2,2
루카복음 19,1-10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만나는 자캐오는 키가 작아서 적잖이 무시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열등감이 쌓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이겨 내고자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키는 작지만, 오히려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곧 세관장이 되어 사람들의 돈을 착취하여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면, 아무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를 더욱 증오하였습니다.
자캐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돌무화과나무의 열매는 일반 무화과만은 못해서 가축 사료로 많이 사용되었고, 그나마 단맛이 나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식량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간 것은 서민들을 밟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음을 상징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볼 것이라고, 자기도 예수님처럼 귀한 분을 떳떳이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키가 크든 작든, 죄인이든 의인이든, 부족하든 풍족하든 상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그냥 내려오라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자캐오는 사랑받고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려오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참되게 만나는 길인 것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104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신명기 6,2-6
히브리서 7,23-28
마르코복음 12,28-34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의 질문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둘째가는 계명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되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자신의 신조(信條)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조란 일종의 인생의 목표입니다. 한번은 공자의 애제자인 자공(子貢)이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평생 지켜야 할 신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서()이다.
한자의 ‘용서할 서’() 자를 풀이하면 ‘마음〔心〕이 서로 같다〔如〕.’는 뜻입니다.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같은 것이 서()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의 마음을 헤아려 그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이 바라는 것을 실천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마음, 곧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닮고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이루어 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신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1030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말라키서 1,14-2,2.8-10
테살로니카 12,7-9.13
마태오복음 23,1-12


이냐시오 성인은 사람들에게 피정 지도를 하려고 『영신 수련』이라는 책을 썼지요. 그 책에서 겸손의 ‘세 단계’를 설명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완전한 겸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완전한 겸손은 하느님께 존경과 영광을 드리고자 부귀보다는 가난을, 명예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업신여김당하기를, 세상 것에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으로 보이기보다는 그리스도처럼 천대받기를 바라고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 완전한 겸손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보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얼마나 겸손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 그들은 가난보다는 세상의 부귀를, 업신여김당하기보다는 인사받고 존경받기를, 천대받기보다는 지혜롭고 현명한 스승으로 대우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집회서에서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거만한 사람의 마음에는 ‘악의 잡초’가 뿌리를 내린다고 하였습니다(3,20.28 참조). 교회의 전통 가르침인 『준수성범』에서도 “겸손한 사람에게는 항상 평화가 있으나 교만한 자의 마음에는 분노와 질투심이 자주 일어난다.”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을 보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늘 분노와 질투를 드러낸 이유를 금방 알게 됩니다. 분노와 질투의 뿌리가 바로 교만이라는 뜻입니다.
겸손(humilitas)의 어원은 ‘땅’(humus), 곧 ‘흙’과 같은 뜻입니다. 우리 존재는 아무리 잘난 척해 보아야 ‘흙덩이’이고, 아무리 지식이 많다 해도 하느님께서 숨결을 거두어 가시면 ‘흙의 먼지’로 흩어지고 말 존재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인간은 ‘겸손’ 그 자체여야 합니다. 그러니 땅처럼 모든 이를 발아래서 받쳐 주고 품어 주는 큰마음의 사람, 하느님의 사랑을 호흡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해지면 마음속 분노와 질투는 저절로 사라집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 31)

지혜서 11,22-12,2
테살로니카 2 1,11-2,2
루카복음 19,1-10


주님께서 거리를 지나가십니다. 자캐오는 이 소식을 듣고 벌써부터 가슴이 떨리고, 심장의 박동 소리가 뱃고동처럼 커짐을 느낍니다. 이 날 이 시간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 모를 정도로 기다려 온 자캐오입니다. 모두가 그를 로마의 앞잡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도 싫었고, 서민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로마에 바치는 자신이 미웠고, 키가 작고 볼품없는 자신의 모습도 싫었던 그였습니다.
오늘 자캐오의 모습은 예전 그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님을 뵈어야만 되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알아주시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혹 보시고 외면해 버리신다 해도 더는 원망하지 않을 태세입니다. 그만큼 그에게는 주님을 뵙는 일이 절실했던 것입니다. 주님을 뵈면 그동안에 어두웠던 자신의 삶이 변화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변화될 수 있는 어떤 해답이라도 얻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회적 체면 따위는 잊은 지 오래입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와 상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지나가신다는 길목을 앞질러 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갑니다. 먼발치에서나마 주님의 모습을 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셔서 나무 위를 올려다보시면서 “자캐오야!”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순간 숨이 멈출 것 같은 진한 감동이 전해져 옵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까지 하십니다. 참으로 분에 넘치는 주님의 배려입니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주님을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지난날 자신의 잘못을 주님께 고백합니다. 자캐오는 주님을 뵙는 순간,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주님께 속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주님을 모시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살다 보면 주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주님을 모시는 그 순간만큼이라도 자캐오의 모습을 닮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자캐오와 그 집에 구원의 선물을 내려 주십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1 01)


모든 성인 대축일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1 02)


위령의 날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1 04)

지혜서 11,22-12,2
테살로니카 2 1,11-2,2
루카복음 19,1-10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자캐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리 나무 위로 올라가 기다립니다. 소문으로만 들어 왔던 분, 서민들과 어울리며 기적을 베푸신다는 그분을 존경심 반 호기심 반으로 기다렸을 겁니다. 예수님을 보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분의 음성이 들립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놀란 가슴으로 내려옵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모십니다. 그러고는 그분만이 주시는 평화를 느낍니다. 자캐오는 감사드리며 선언합니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얼마나 순박한 감동입니까? 그는 진심으로 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셨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던 것이지요.
자캐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당당한 자캐오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캐오였기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을 겁니다. 작은 키가 축복의 계기가 된 셈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부족한 부분이 드러납니다. 어두운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도 있고, 현실의 아픔 때문에 좌절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고통을 이겨 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고통을 주님께로 가는 징검다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캐오의 행동이 남긴 교훈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