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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06 조회수1,81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7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제1독서 로마 11,29-36

형제 여러분,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루카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어떤 신부님께서 예전에

제가 드렸던 예화모음 파일을

 다시 좀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제가 10년 가까이

모아놓았던 자료인데,

같이 공유하려고 몇 년 전에

그 신부님께 드렸던 것이지요.

그런데 신부님께 다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료를 저 혼자 쓰기 위해

 드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의 실수로 이 파일을

컴퓨터에서 삭제해서 아예

자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 당시에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그리고 정말로

많은 자료를 주제별로

모았기 때문에,

강론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복원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지만,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더한 일도 있는데 뭘 신경 써.’

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넘어갔습니다.
지금 현재 제가 모아놓은

예화집은 없습니다.

그러나 없어지길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모로 편할 수는 있겠지만,

이 예화의 틀에 갇힐 확률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예화집이 없다보니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그마한 것에도

관심과 관찰을 하게 됩니다.

이로써 새로운 생각과 다양한

묵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예화집이 없는 편이

훨씬 더 이롭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어떤 것에 갇혀 있을 때,

그곳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내 것’이라고 하면서

여기에 갇혀 있을 때,

이웃을 향한 사랑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시는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기도 힘들게 됩니다.

즉, ‘내 것’에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주님의 것인

‘사랑’을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초대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네 친구나 형제,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를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고 하시지요.

솔직히 나와 상관없는

사람을 초대한다는

것이 쉬울까요?

또한 내게 별 이득을

주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초대해서 대접한다는 것

 역시 이 세상의 상식에서는

크게 벗어나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보답을

받지 않아야 하늘에서

보답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시지요.
우리들이 이 세상의 것에

갇혀 있지 않기를 바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실 영원히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에 갈 때,

내가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벌거벗은

 빈 몸으로 왔듯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에도

아무것도 없는 빈 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주님의 뜻에

맞게 한 사랑의 행위들이

인정을 받아 가장 큰 보답을

받는 순간이

하늘나라에서입니다.

그곳에서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세상의 것에 갇혀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품에 머무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철학은 열심히 흘른

땀에서부터 생겨나며,

마음은 매일의 노동을

통해 연마된다.

(이나모리 가즈오)

예전에 있었던

본당에서의 본당잔치에서...

"밥 한 그릇을 보면서..."

우리가 매 식사 때마다

 만나게 되는 ‘밥’ 한 그릇을

생각해봅니다.

 매일 먹다보니 너무 쉽게

생각하지만,

밥이 제 앞에 놓이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또한 밥이 놓이기까지

 도움을 준 것들 역시

 어마어마하지요.

비, 햇살, 흙, 물,

 구슬땀을 흘린 농부,

그리고 밥을 정성껏

지은 이 역시 있습니다.

 이 정도만 있으면 밥이

제 앞에 놓이는 것이 아니지요.

 더 많은 것들이 그리고

더 많은 도움을 통해서 밥이

우리의 앞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을 떠올려보십시오.

감사할 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인 우리,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인

 ‘사랑’을 늘 힘주어서

강조하셨나 봅니다.

밥 한공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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