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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 입을 벌려라, 내가 채워주리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0 조회수1,643 추천수0 반대(0) 신고

 

 "입을 벌려라, 내가 채워주리라."

+찬미예수님

 오늘 말씀의 주제는 잔치입니다.

여러분들 신앙 지키고

사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대충 지키고 살려면 쉬워요.

그런데 정말 제대로

신앙생활하려면 참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힘들고, 억울하고, 어떤 때는

속상하고 약 오를 때도 있어요.

또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하면

서러울 때도 많고,

 하느님의 뜻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참 많아요.

그래도 끝까지 항구하게

내 십자가가 버리지 않고

죽음의 순간까지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한 자에게는

어떤 상을 주실 것인가에

대해 오늘 1독서에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연한 살코기에

맑은 술을 준비해서

사람들을 부르신다.’

성서에는 안 나오지만

 연한 살코기도 수입산은

아니라 한우일 것 같아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잔치 상에서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신대요.

‘네가 내 뜻대로 살려고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힘들고

억울하게 살았느냐?

그만 눈물 흘려라’

하시면서 하느님이 직접

눈물을 닦아주신대요.

그리고 한세상 살면서

받은 상처 때문에 생긴

너울을 없애 주시고,

또 억울함까지 풀어주신대요.

‘네가 나 믿고 사느냐 얼마나

애매한 소리도 많이 듣고

모함도 많이 듣고,

또 얼마나 싸우고

싶었을 때도 많았느냐?

그것 다 참고 산

그 억울함 풀어준다.’

 1독서를 보면 이 잔치는

한 평생 믿음을 가지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산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보상으로 나옵니다.

나나 여러분에게 죽어서

이런 천국의 잔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인생은

허무한 것이에요. 그렇죠?

신앙도 아무 쓸모가 없어요.

죽어서 천국에 없다면

신앙생활을 왜 합니까?

이런 보상을 해주신다는 것을

 믿기에 사제생활이

힘들어도 하고 살았어요.

왜 그만 두고

싶었을 때가 없었겠어요?

힘들 때마다 억울할 때 마다

천국 잔치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버티고 산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초청된 사람은

유대인을 뜻합니다.

특별히 열심히 산다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임금이 불렀는데,

즉 하느님이 초대했는데

야무지게 거절합니다.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고

심지어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습니다.

하느님은 특별히 유대인을

선택해서 초대했고

독생성자까지 보내주셨는데도,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오라고 해도 오지 않고,

 먹으라고 해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늘나라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죄인들,

이방인들이 그 자리에 초대 받아

유대인들이 먹을 음식을

 다 먹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성격에 대해 나옵니다.

첫 번째 이 잔치는

기쁨이 넘치는 초대다.

여러분 가운데 청와대에

초대받아 가 보신 분 있으십니까?

만일 대통령이 나를 초청했다고

생각하면, 잠 제대도 올까요?

아마 양복도 쫙 새로 장만하고,

피부샵에도 가고.

그런데 미사 올 때는

누구 만나러 옵니까?

하느님이 초대하셔서 온 것입니다.

우리는 “나 오늘 미사 갔다 왔다”

합니다. 이 말처럼

건방진 말을 없습니다.

“주님이 오늘 미사에

대해 주시어 갔다 왔어.”

내가 미사를 선택해서

왔다는 생각만큼

 우리가 미사 때 받을 은혜를

가로막는 것이 없어요.

감히 발 디딜 자격도 없는

 죄인을 주일마다 평일미사

때마다 주님이 불러주셨어요.

두 다리로 일어서게 해주셨고,

미사시간에 졸지 않게 해주셨고,

무사히 집에 도착하게 해주셨죠.

미사 때마다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

왔다갔다 생각하면

치유 안 될 수가 없어요.

하느님이 부르시는 초대는

억지로 끌려가는 초대가 아니라,

발걸음 기쁘고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매 미사 때마다

 초대하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오지 않았던 것은 없었던가?

오더라도 억지로 끌려오는

그런 마음의

주일미사는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겁니다.

통계에 의하면 주일을 지키는

 이유가 10명중 7명이

고백성사보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랍니다.

고백소 들어가기 싫어 주일미사

나온다는 정신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무슨

 하느님이 오시겠는가?

청와대가고 대통령만나는 것과

 비교가 안 되는 것이 이 미사의

초대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기쁘고 행복하게 살라고

삶에 초대받아서

엄마 뱃속에서부터

잉태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미사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미사 때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는 말은 ‘기쁨을 전합시다.’

‘기쁘게 삽시다.’

하는 뜻 일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기쁘게 못살까?

기쁘게 못사는 이유는

분명히 있어요.

첫째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 때는

기쁘게 살래야 못삽니다.

사제생활을 한평생해도

살아계신 하느님을

못 만나고 죽은 사제가

그 삶이 기뻤겠습니까?

그것은 사제가

아니라 직업입니다.

사제도 조금만 정신 놓으면

직업이 됩니다.

미사 드리는 기계,

강론하는 기계

올해로 내가 34년째

 사제생활을 하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무서운

유혹이 뭔지 압니까?

여자? 여자를

봐도 전기도 안와요.

돈? 그것은 신부될 때

포기한 것이고요.

해가 갈수록 사제들에게

유혹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겁니다.

이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늘 미사 때마다

하느님을 체험하려고 애써야하고,

강론도 살아있는 하느님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합니다.

성무를 집행하면서도,

성무일도를 읽으면서도

살아있는 하느님을

그 기도문가운데서

찾으려고 애써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주님,

죽을힘을 다해 살았고,

이제 정말 하느님 만나러 갑니다.’

하면서 죽을 수 있지 않겠는가?

 살아있는 하느님은 성서를

통해서, 성사를 통해서,

또 우리의 체험을

통해서 오십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못 만나고

살 때는 직책이 무엇이든 늘

얼굴은 경직이 되어있습니다.

얼굴에 기쁨이 없습니다.

기쁨의 잔치에 와도

얼굴은 늘 어두워있습니다.

 기쁘게 못사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는 부서지지 못할 때

기쁘게 못삽니다.

내 자신을 깨뜨리지

못하고 살 때,

 우리는 기쁨이 없습니다.

남을 부시고자 할 때 어둠이

 찾아오듯 다른 사람 밑에

내려가지 않으려할 때

기쁨이 없습니다.

포기하지 못할 때

우리는 기쁨이 없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느님이

초대하는 이 잔치의

첫 번째는 기쁨입니다.

기쁨을 가로막고 있는

 원인이 있다면,

본인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기적은 내가 애착하는 것의

마지막 한 조각을

포기할 때 일어납니다.

 잔치의 성격 두 번째는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얼마나

귀한 것을 잃어버리는가?’를

 알려줍니다.

예수님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받을 형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릴 것이 무엇인가를,

얼마나 귀한 것을 잃어버리는가를

복음을 알려줍니다.

복음은 협박하는 글이나

두려움을 주는 글이 아닙니다.

 세 번째로 ‘길거리에 있는

사람이 대신 초대받았지만

그 가운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쫒겨난다’고

되어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길거리에 있다가 초대받은

 사람이 무슨 예복을 입고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인가요?

여기서 예복은 눈에 보이는

예복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복은 바로 정신을 뜻합니다.

예복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의 정신을 의미합니다.

정신병자는 단추도

제대로 못 채웁니다.

자기 옷 제대로 못 입습니다.

우리의 내면의 세계는 외모에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단정한 사람, 풀어헤치는 사람,

겉을 보면 속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반드시 입고 나가야 할

첫 번째가

 회개의 예복을 입어야합니다.

하느님 앞에 겸손하게

살지 않았던 것 반성하고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고백해야합니다.

두 번째 입어야할 예복은

믿음의 예복을 입어야합니다.

취미생활로 성당 나온 것이 아니라,

친구 따라 성당 나온 것이 아니라,

내킬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구원하실 분이

주님이시라는 믿음을 갖고

 나와야합니다.

이러한 예복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복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전혀

준비 없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복장도 단정하게,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야합니다.

조금 일찍 나와서 기도하고

묵상하고 오늘 주님의 몸인

성체를 모시기에 합당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고백소에서

기다리는 사제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되이 고백해야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다음

미사에 임한다면,

미사의 초대를 통해서

얼마나 큰 은혜가 내리겠습니까?

 오늘 성서 귀절 하나 외우십시오.

시편 81장 11절,

‘입을 벌려라, 내가 채워주리라.’

오늘 이 미사 때 여러분은

적어도 입을 벌려야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채워주십니다.

입 다물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밥을 먹여 주고,

꿀을 넣어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미사 때

채워주실 것을 밉습니다. 아멘

2017년 연중 제 28주일(10/15)

서운동성당 김웅열

(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서운동성당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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