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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외된 나의 시간과 내 존재를 찾아서 - 살레시오회 토토로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4 조회수1,286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전에 열차를 타는데 출발시각이 9시 51분이었습니다. 그 전에 구입한 탑승권에는 출발시각이 8시 22분이었습니다. 열차시각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 “출발시간이 참 애매하네. 8시 20분 아니면 25분, 9시 50분으로 정하지 왜 어중간한 시간을 출발시간으로 잡았지?”였습니다. 어중간한 시간에 출발하면 뭔가 권위있어 보이고, 출발 또는 도착 시간의 정확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여서 인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열차 안에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래. 사실 0분과 5분 사이, 5분과 10분 사이의 시간도 엄연한 시간의 일부인데, 그 시간들을 너무 존재감없이 여긴 건 아닐까?” 사실 저는 모든 것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에 익숙합니다. 어중간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근데 이런 저의 성향은 많은 분들이 공감할 정도로 보편적인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흑 아니면 백을 선호합니다. 회색이나 옅은 검정색 또는 조금 어두운 흰색을 찾지 않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흑과 백처럼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뚜렷한 자기 색깔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은 무시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흠없는 완벽한 피조물로 만들지 않으신 이유는 오직 완벽한 존재는 하느님 밖에 없음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지만, 하느님 은총의 힘으로 부족함 안에서 가능성을 찾으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딱딱 들어맞는 존재는 아니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요소들이 우리를 완벽함으로 데려다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0분에서 출발한 시간이 1~4분이란 시간을, 5분에서 출발한 시간이 6~9분이란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 사소한 것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간다면 완전함을 향해 나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성인들도 그들만의 타고난 달란트가 있었다기보다 일상의 것을 달란트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부단히 일상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정쩡한 시간의 가치를 깨달은 분들이 성인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안 이후로 저는 열차시간이나 다른 특정한 시간을 물어보면 소외받은 1~4분, 6~9분을 챙겨주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0분과 5분을 기준으로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외로움을 느낄 사이 시간을 외면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은총으로 가득찬 저의 사소한 일상도 쉽게 넘어가지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완벽함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기억하며 주어진 삶을 기쁘게 살도록 노력하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가득 받는 여러분도 그렇게 하실거죠? 좋습니다. 함께 손잡고 우리의 거룩한 삶의 길을 열심히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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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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