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매일묵상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5 조회수1,551 추천수3 반대(1) 신고

 



리더의 자세



갖은 수모와 상처 속에 수많은 우여곡절과 부침을 거듭하며, 오랜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우리 민족사를 돌아보며, 백성의 리더들, 학자들,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비전이나 철학이 결여된 인사들, 기본적인 양심이나 상식마저 찾아볼 수 없던 지도자들, 백성들을 향한 애정이나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던 리더들, 그래서 결국 자기 호주머니나 곳간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정치인들로 인해 우리 백성들이 겪었던 고초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

오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식별력입니다. 누가 양떼를 생명의 땅과 기름진 푸른 초원으로 이끌 착한 목자인지, 누가 양떼를 이리 저리 팔아먹고 잡아먹을 삯꾼인지 식별하는 힘이 요구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성인이 한 분 계십니다. 독일 출신 도미니코회 수도자 알베르토 주교 학자(1206~1280)입니다. 아름다운 도나우 강변에서 태어난 그는, 오늘날로 치면 ‘엄친아’ ‘만물박사’ ‘팔방미인’이었습니다. 그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엄청난 학문적 성취와 뛰어난 인품, 거기다 그리스도와 진리를 향한 강렬한 목마름, 교회와 수도회를 향한 애정, 그리고 양떼를 향한 사목적 열정, 그리고 겸손의 덕까지 갖춘 불세출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그냥 성 알베르토라고 하지 않고 성 대(大) 알베르토라고 부릅니다.


알베르토는 신학의 기초로서 철학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후에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합니다. 그는 당시 유럽 학문의 중심지였던 파리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강의했는데, 그의 가르침에 매료된 수많은 제자들이 그의 노선을 따랐습니다.


알베르토는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식물학, 천문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 지리학, 기상학, 윤리학, 수학, 논리학, 수사학, 경제학, 정치학, 형이상학 등에 대한 수많은 집필을 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이 얼마나 찬란한 것이었는지는 비오 2세 교황님은 이렇게 극찬했습니다. “알베르토는 인간으로서 알 수 있는 바는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지역에서 발생한 극한 분쟁의 해결사로서 활동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대학자로서 자신의 학문 안에만 머물지 않고, 그가 터득한 진리를 자신이 살아가던 사회 안에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알베르토 생애 안에 또 한 가지 놀라운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평생토록 일관되게 추구했던 극단의 겸손입니다. 도미니코회 수도자로서의 그는 1254년 독일 북부의 테우토니아 관구의 관구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과 3년 후인 1257년 자진해서 관구장직을 사임합니다.


이런 겸손한 알베르토를 사람들은 그냥 놔두지 않았습니다. 그를 눈여겨본 알렉산데르 4세 교황님께서는 1256년, 그를 아나니아에 초청해 교황청 고문으로 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차례 극구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1260년, 그를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불과 2년 후, 수도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어, 또 다시 주교직에서 자진 사임합니다.



성(聖) 대(大) 알베르토 주교 학자는 하느님의 심오한 지혜와 진리를 끊임없이 갈구했으며, 모든 것을 인간의 지혜와 신앙으로 조화시켰습니다. 대학자이면서도 한없이 겸손했던 그는, 그 누구도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부족한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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