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5 조회수2,689 추천수11 반대(0)

신학교의 사목연구소 주체로 교구 사제 성소의 계발과 양성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소국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발표를 하였습니다. 본당에 12명의 신학생이 있는 신부님께서도 발표를 하였습니다. 동성고 예비 신학생을 담당하는 신부님께서도 발표를 하였습니다. 모두들 현장에서 경험한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신학교의 신부님께서는 양성의 의미와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현장에서 있었던 경험보다는 양성의 의미와 방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존의 양성은 붕어빵을 찍어내는 것처럼 일정한 틀에 맞추어서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이념, 가치, 지식, 교리, 직무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런 양성의 방법은 신속한 면이 있고, 양성을 받는 이들을 선별하는데도 이점이 있습니다. 기준에 맞지 않으면 탈락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붕어빵에는 영혼이 없듯이, 이런 양성의 방법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성찰하기는 어렵습니다. 규율과 질서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도 하고, 자리에 있을 때만 따르기도 합니다. 본인이 주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양성은 식물을 키우듯이 하는 것입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지만 식물은 스스로 햇빛을 받으며, 땅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식물은 스스로 싹을 틔우고, 줄기를 세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두운 땅 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내적인 변화를 가지도록 이끌어주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하게하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일정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정표를 조직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면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세우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성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 누가 강도를 당한 사람의 이웃입니까? 내가 당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고 나를 믿습니까?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제자들은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찾은 답은 정답을 배워서 아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시련과 박해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있었고, 길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붕어빵을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거짓과 불의 앞에서 당당하셨습니다. 위선과 허위를 냉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가난한 이, 아픈 이, 굶주린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용서와 자비를 말씀하셨으며,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양성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질문을 하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십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였습니다.” 이제 단순히 피부가 깨끗해 진 것을 넘어서 영혼이 구원받았음을 선포해 주십니다.

 

학생들과 면접을 하면서 사제가 되고 싶은 동기를 물어보았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이태석 신부님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이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사제성소의 계발은 신부님들이 충실하게 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사제성소의 계발은 가정에서 함께 기도할 때 자라납니다. 사제성소의 계발은 내적인 동기부여를 할 때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과 우리들의 뇌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눈은 사물을 바라보는 창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렇게 기쁘고, 감사하고, 고맙게 보일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으로,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시기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아비규환으로 보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들의 몸도 있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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