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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15.강론."예수님의 발 앞에 엎디려 감사를 드렸다."-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5 조회수1,764 추천수1 반대(0) 신고

 

루카 17,11-19(연중 32 )

 

현대인은 자신의 정단한 권리가 침해당하면 못견뎌합니다. 경제적 이익이 침해당하면 더욱 못견뎌하고, 인권에 대한 침해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반면에, 감사에는 대단히 인색합니다. 모든 것을 정당하고 합당한 권리와 의무로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의료보험이 모든 경비를 지불한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다!”고 정당한 권리라 여기면서, 치료가 끝나면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떠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나병을 치유 받은 열 사람 중에서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하느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카 17,18)

 

만약 오늘 우리가 감사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 아홉 중에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있다면, 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 질문은 가장 어려운 영적인 선택 하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는 입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문제입니다.

묘하게도,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믿지 않고 있기가 일수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마음속에서 그 실상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감사하지도 기뻐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비를 입었음에도 여전히 무엇인가를 채우고자 안달하거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마치 아버지께서 베푸는 잔치에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 서 있는 큰 아들과 같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병을 치유 받았으면서도, 하느님을 찬양하지도 감사를 드리지도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비에 대한 믿음이 약한 탓일 것입니다. 또는 자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탓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돌아와 감사드린 사마리아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그렇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하느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를 불러온 것입니다. 그러니, 나병의 치유가 구원인 것이 아니라, 그 치유가 하느님의 사랑임을 믿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치유 받고도 감사하지 못함은 치유에 대한 믿음이 약한 까닭일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약한 까닭일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가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가림 질 해줍니다.

그러기에, 지금 감사하며 기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곧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주고,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대해 감사할 수 있을까요?”

 

아침 식사 때 먹은 꿀 한 숟가락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꿀 한 숟가락, 이를 위해 하느님은 몇 천 마리의 벌을 몇 천 시간 동안 날아다니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몇 천 가지 꽃들을 피게 하셨고, 태양을 비추셨습니다. 비가 오면 벌들이 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느님께서 지구를 약간 기울어지게 만드셨음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해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발육과 성숙을 체험하고, 죽음과 소멸도 체험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같은 계절만 있었을 것입니다.

또 밥상의 반찬을 두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음식들이 바로 나를 위해 목숨 바치고 있음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목숨이 나를 위해 몸 바쳤는지! 닭은 나를 위해 몇 마리 쯤 목숨을 바쳤을까요? 또 몇 마리의 소가, 몇 마리의 멸치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쳤을까요?

이처럼, 감사하는 일은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음을 의식하면서, 모든 삶을 지속시켜주고 있는 많은 기적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의 신비를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모든 것 안에서 기적을 일으키고 계시는 그분을 보는 눈! 신비를 바라보는 눈!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며 활동하시는 그분을 볼 줄 아는 눈이야말로, 바로 감사의 눈 일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페 5,2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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