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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1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7 조회수1,79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11월 17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제1독서 지혜 13,1-9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

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3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5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6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크게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또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는 가운데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7 그들은 그분의 업적을

 줄곧 주의 깊게 탐구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8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9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복음 루카 17,26-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
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어떤 분께서 인터넷의 SNS를

뒤적이다가 첫사랑을 만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내성적이어서 단 한 번도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냥 멀리서

얼굴만 봐도 좋을

정도로 잊지 못할

첫사랑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로 초등학교

졸업을 했고 그 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성인이 되었고 결혼까지

한 지금 ‘혹시’라는 생각으로

인터넷 SNS를 뒤졌는데,

어렵지 않게 첫사랑이며

동시에 짝사랑의 대상을

찾게 된 것입니다.

래서 제가

 “너무 기뻤겠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의 대답은

아주 의외였지요.
“신부님, 찾지 않는 편이

 더 나았던 것 같아요.

옛날의 모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귀엽고

예쁜 아이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그냥 중년의 부인이더군요.

이제 제 기억 속의 인물이

사라지고 말았어요.”
관념 속에만 존재했던

추억 속의 인물이 현실의

인물이 되는 순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소중했던

감성의 공간이

사라진 것입니다.

 ‘모르는 편이 더 낫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는

 인터넷의 발달로 조금의

노력으로도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편리한 세상이지만

혹시 우리 각자의 감성을

가로막는 도구가

아닐까 싶더군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알 수 없는 것은 부정하고

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

그래서 하느님의 존재 역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지요.

그러나 꼭 알아야 할까요?

알아야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행복할까요?

 보지 않아도 또 듣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감성이

풍부해지면서 지금을 더욱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온전하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직접 볼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 역시 직접 볼 수 없으며

그래서 완전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은 큰 착각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이 나라는 분명히 오지만

동시에 갑작스럽게

온다고 하시지요.

노아와 롯 때와 사람의

아들의 때는 하느님의 심판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직접 뵙고

그분의 말을 직접 들어야

준비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믿음을

갖고 그분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준비를 통해

우리는 지금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을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순간의 만족을 주는 쾌락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따르면서

행복한 경우도 없습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면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더 많지 않습니까?
비록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의

아들의 날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분명히

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잘 준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준비가 먼 훗날의

기쁨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기쁨도

동시에 가져다줍니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는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양창순)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잘 사는 방법"

하버드 의과대학의

스리니바산 필레이 교수는

긍정적인 것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뇌 과학의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뇌는 자극적인 감정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멋진 풍경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지만,

내일 치룰 시험에 대한

 불안이 생기면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 곧바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불안, 두려움 등이 훨씬 더

자극적이기 때문에

뇌가 쉽게

압도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되면 더욱 더

부정적 감정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게 됩니다.

뇌는 더 큰 자극을

찾아가기 때문이지요.
뇌의 속성이 어쩔 수 없이

그냥 살아야 할까요?

그런데 뇌의 놀라운 점이

하나 더 있다고 하더군요.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을

 반복하다보면 긍정적인

감정이 편도체 활성화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디에 주의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삶,

 부정적인 삶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겠습니까?

부정적 감정이 생기면

의도적으로도 계속해서

긍정적 감정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잘 살 수 있습니다.

너무나 신기한 우리의 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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