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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33주일 2017년 11월 19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7 조회수1,599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33주일 20171119

마태 25, 14-30

 

오늘 복음은 어떤 사람이 길을 떠나면서 자기의 종들에게 재산을 맡긴 이야기였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란트, 또 한 사람에게는 두 탈란트, 그리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탈란트를 각각 맡겼습니다. 탈란트는 그 시대 화폐 단위 중 가장 큰 것입니다. 한 탈란트는 그 시대 농촌 근로자 한 사람이 20년 동안 노동하여 받는 품삯에 해당하는 거액입니다. 종에게 그런 거액을 맡기는 일은 실제로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현실에 없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어떤 은혜로움을 살고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를 말합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다섯 탈란트를 받은 종과 두 탈란트를 받은 종은 각각 그것을 값지게 활용하여, 다섯 탈란트 혹은 두 탈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러나 한 탈란트를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받은 것을 숨겨두었습니다. 그는 받은 탈란트를 활용하지 않고, 자기의 미래를 위해 안전하게 보관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주인이 돌아와서 셈을 합니다. 다섯 탈란트를 받은 종과 두 탈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값지게 활용하였다고, 주인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 탈란트를 받아 그것을 숨겨둔 종은 그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불행을 당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을 값지게 활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은 종들과 셈을 하지만, 종에게 나누어주었던 재산과 그 종이 벌어들인 것을 회수하지는 않습니다. 그 주인은 자기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종들에게 맡긴 것이 아닙니다. 주인은 종들이 은혜롭게 받은 것을 내어주고 쏟아서 활용해 줄 것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값지게 활용한 종을 축복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미래만 생각하며, 받은 것을 땅 속에 묻어두었던 종은, ‘악하고 게으른종이라는 비난과 더불어 받았던 것마저 빼앗깁니다.

 

하느님이 주신 은혜로운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 사실을 감사하며, 그 생명을 활용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오늘의 복음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이고, 부모의 자상한 보살핌이 있어 성장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부모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자녀입니다. 스승이 자기를 위해 쏟은 정성을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자기가 사는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 많다는 사실과 그 사회를 위해 자기도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건전한 시민입니다. 자기가 받은 것을 전혀 감사하지 않아도, 한 인간으로 먹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아도, 스승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아도, 사회를 위해 공헌하지 않아도, 자기 한 몸 잘 먹고 잘 살 수는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강요된 일이 아닙니다. 장차 가야 할 지옥이 두려워서 신앙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신앙인이 되어야 복을 받아 잘 살 수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사업이 더 잘 되고, 지위가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보는 사람입니다. 부모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자녀는 그렇지 않은 자녀보다 조금 더 보는 자녀입니다. 스승과 사회에 대해 감사하고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조금 더 보는 제자이고 시민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이 베풀고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입니다. 베풀어진 것이 다섯 탈란트일 수도 있고, 한 탈란트일 수도 있습니다. 많거나 적거나 그것은 은혜로운 축복입니다. 하느님이 베풀고 축복하신 결과로 내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보지 못한 것뿐입니다. 자기의 삶을 은혜로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빛 하나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저기 하늘 높은 곳에 계시고, 나는 여기 땅에 있다는 식으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하신 일 다르고, 내가 하는 일이 다르다고만 생각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내가 벌어서 만든 재산, 내가 노력하여 얻은 기술과 자격증,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느님이 베푸신 은혜로운 것으로 보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하느님이 베푸신 것으로 보는 마음 안에 풍요와 감사와 행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사람은 자비와 헌신을 실천하며 삽니다. 그와 반대로 내가 가진 것을 나의 것, 나만을 위한 것으로 보는 마음에는 불만, 욕심, 무자비 등의 어둠이 있습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다.”고 요한복음서(1, 5)는 말합니다. 우리 자신만 보는 어둠 속에, 베푸심을 보게 하는 신앙의 빛이 비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탈란트 이야기는 주어진 것을 받아들고, 자기의 미래만을 생각하는 사람을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주인이 베풀었듯이, 받은 사람도 베풀어서 값지게 활용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빛이 주어졌지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요한복음서(1,5)는 말합니다. 베푸심이 있어, 내가 있고, 내 것이 있습니다.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어둠 안에서 자기 자신과 자기가 가진 것만 봅니다. 그러면 베푸심이라는 기원(起源)이 사라집니다. 베푸심이라는 기원이 사라지면, 우리의 생명, 재산, 지위, 자격증, 이런 것이 모두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둠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여 우리의 삶을 보는 삶의 운동입니다. 자기만, 혹은 자기가 가진 것만, 소중히 생각하는 데에서 한 발 물러서면, 하느님의 빛이 다가옵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빌고, 바쳐서, 우리의 욕심을 성취하려는 수작이 아닙니다. 신앙은 베풀고 축복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연장하여 우리도 이웃을 보살피고 축복하며 살자는 운동입니다. 다섯 탈란트, 두 탈란트, 한 탈란트 모두가 은혜로운 것입니다.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은혜롭게 베풀어졌습니다.

 

우리가 받아 누리는 것도, 어느 날 우리를 떠나갈 것입니다. 아름다운 단풍이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는생명의 순리가 어떤 아름다움인지 말해 주는 계절입니다. 베풀어주신 생명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축복을 실천하며 한껏 푸르게 살면, 그 생명은 떠나가면서도 아름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계절입니다. 우리도 베풀어진 것을 나만을 위해 숨겨두는 어둠 안에 머물지 않고, 베푸심의 빛을 받아 한껏 푸르게 또 은혜롭게 내어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베푸셨습니다. 그 빛의 순리를 따라 살아서, 낙엽이 되라는 계절입니다.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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