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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매일묵상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7 조회수1,763 추천수6 반대(0) 신고

 

 

그 어느 것 하나도 제 것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 안에 약소국 백성들, 그리고 왕실의 자녀들이 겪었던 비애는 참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 역사만 되돌아봐도 잘 알수 있습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잇단 침입, 초토화, 식민지화, 언어나 문화의 말살....거기다 섭정, 상납, 폐위, 볼모, 인질, 정략 결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1207~1231)도 그런 분위기 안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분입니다. 헝가리 왕 안드레아 2세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불과 4살때 독일 영주의 아들 루도비코와 정략 약혼을 하게 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6살 때는 어머니가 암살 당합니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14세 되던 해, 루도비코와 결혼을 하여 세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다가 병사하고 맙니다. 불과 스무살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었으니,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그녀의 인생은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남편 루도비코가 세상을 떠난 후 엘리사벳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만 바라보는 세 어린 자녀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자신의 인생, 남편의 죽음으로 갑자기 바뀐 주변의 냉랭한 시선...얼마나 슬펐던지 그녀는 온 성이 떠나갈 듯 밤낮 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놀라운 신앙심으로 그 모든 시련과 역경을 꿋꿋히 헤쳐나갑니다. 탁월한 영적 지도자였던 마르부르크의 콘라드 신부의 지도 아래 위기를 호기로, 불행을 축복으로 변화시켜나가며, 시련 속에서도 더없이 행복한 짧고 굵은삶을 살았습니다. 그녀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해나갈 수 있었던 비결이자 원동력은 충만한 영성생활과 기도생활이었습니다.

 

 

당시 왕비를 잃은 프레데릭 2세 황제가 엘리사벳의 소식을 듣고 적극적인 구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세속에서 천상으로 방향지워졌던 그녀는 청혼을 정중히 사양했다고 전해집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에 깊이 매료된 엘리사벳은 프란치스코 재속회 회원이 되었고, 성인께서 하신 것처럼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성인처럼 극단적 청빈의 삶을 살았으며, 남은 생애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데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세상을 떠나가 직전 저는 그녀의 마지막 고해를 들었습니다. 고해성사가 끝난 후 남아있는 재산과 의류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 고 제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제 것이 아닙니다. 모두 가난한 이웃들의 것입니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이 옷만 빼고 모든 것들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이 말을 마친 그녀는 지극히 경건한 얼굴로 성체를 모셨고, 잠들 듯이 평온한 얼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마르부르크의 콘라드 신부)

 

 

그녀는 아내이며 어머니로서 시성된 첫 성인이며, 여성 프란치스칸으로서 시성된 첫 성인입니다”(그레고리오 9세 교황)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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