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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감사의 회복이 구원의 열쇠다
작성자김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8 조회수3,205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년 가해 연중 제33주일

<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복음: 마태오 25,14-30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미국 위스콘신 주 천체연구소에 근무하던 찬드라세카르(S. Chandrasekhar, 1910~1995.)박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1947년 어느 날 시카고대학에서 박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겨울방학동안 고급물리학에 관한 특강을 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박사는 흔쾌히 승낙하고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몇 주 후 학교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특강을 신청한 학생 수가 두 명밖에 되지 않아 강의를 취소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찬드라세카르 박사는 숫자에 상관없이 두 학생을 위해 강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지역은 11월부터 4월까지 눈이 내리는 겨울이 긴 동네입니다. 게다가 당시는 도로와 차량의 상황들이 지금처럼 좋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사는 한 주에 두 번씩 몇 주 동안 세 시간을 넘게 운전해가며 시카고 대학까지 갔습니다. 학생은 단 두 명뿐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강의 했습니다.

10년 뒤인 1957년에 양첸닝(Chen-Ning Yang, 1922~)과 리청다오(Lee Tsung-Dao, 1926~)라는 30대 중반에 불과한 두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두 사람은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셨던 찬드라세카르 박사님이 오늘 저희들을 이 자리에 서게 해주셨습니다.”

< 국민일보, [오늘을 행복하게] ‘한 영혼을 귀하게’, 2005. 11. 22. 참조 >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용해 자기만족을 얻으려고 해서 뉴스에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런 선생님들은 선생님으로 사는 것에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자기만족을 위해 이용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의 미래도 망치고 자신의 삶도 망가지게 됩니다.

반면 위 사례의 찬드라세카르 박사는 단 두 학생만이라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모두 노벨 물리학상을 타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결과의 차이는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만족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그 경중의 차이에 상관없이 감사할 수 있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고 그렇지 못하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탈렌트 비유가 이것입니다.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누구에게 다섯 탈렌트, 누구에게 두 탈렌트, 누구에게 한 탈렌트를 주시지 않습니다. 각자 능력에 따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운전면허도 없는 아이에게 트럭 운전을 시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아이가 트럭운전을 하고 싶은데 방청소 하는 일만 시킨다고 불평을 하면 방청소가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이 한 탈렌트를 받았던 종입니다. 그러나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따진다면 한 탈렌트도 6억이나 되는 큰돈입니다. 이 종은 그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덜 받았다는 느낌 때문에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원망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구원을 위해 각자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힘은 감사인데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야 그 능력으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늘나라로 오라고 자전거를 주셨는데 감사는 그 자전거를 움직일 수 있는 체인과 같습니다. 체인이 끊어지면 아무리 발을 저어도 자전거가 나가지 않습니다. 빠져버린 체인을 끼우는 일은 본인 자신이 해야 합니다. 닉 부이치치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어도 하느님께 감사하며 희망 전도사로서 수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며 살아가고 있지만,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그것밖에 주지 않으신 하느님께 원망스러워 어떠한 일도 해 드리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렇다면 감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학살기념관> 앞마당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유대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는 한 남자 의 동상이 서있습니다. 폴란드인 초등학교 교사였던 코르작크 선생님의 동상입니다.

히틀러의 독일군은 폴란드에서만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했습니다. 어느 날, 폴란드의 어느 한 초등학교에 한 무리의 독일군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는 유대인임을 표시하는 별을 가슴에 단 아이들을 전부 나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명령이 무슨 명령인지를 알고 있는 유대 아이들은 벌벌 떨면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여자 학생이 두려워 떨며 선생님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선생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아이들을 꼭 껴안았습니다. 독일군은 그 선생님을 향해 물러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이들을 꼭 껴안은 놓지 않았습니다. 독일군은 울며 매어달리는 유대 어린이들을 강제로 트럭에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폴란드인 선생님은 그 여자 아이들을 껴안은 채 같이 트럭에 올랐습니다. 그 트럭은 독가스실로 향했습니다. 극도의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어디를 가든 선생님이 너희들과 함께 갈 테니까 너무 걱정 말아라. , 우리 함께 기도하자!”

그리고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에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물었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안해 졌니?”

아이들이 대답했습니다.

! 편안해요.”

그리고 코르자크 선생님은 아이들을 꼭 껴안은 체 함께 가스실로 들어갔습니다.

여기 유대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로 들어갔던 폴란드인 선생님이 바로 동상의 주인공이 바로 코르작크 선생님입니다. 코르작크 선생님은 유대인이 아니고 폴란드인이었기 때문에 가스실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기념관에 들어가 크르자크 선생님의 동상을 보는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유다인들은 감사의 마음이 일 것이고, 만약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이 교사라면 자신도 그런 삶을 살고 싶어 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념관에 들어가야합니다. 그 기념관이 성당이고 그 기념행사가 미사입니다. 만약 부모님께 대한 감사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바로 부모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고생을 기억하고 묵상하면 됩니다.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미사 안에서는 주님 사랑을 기억하며 오로지 감사가 솟아 나와야합니다. 그래서 한 때는 미사를 그저 감사로만 부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 감사가 일상이 되어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그 감사의 기운으로 밀고나갈 수 있습니다.

 

1991년 사과 재배로 유명한 일본 아오모리 현에 기록적인 태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1년 동안 땀 흘리며 재배했던 사과의 90%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농민들은 비탄에 빠졌고 하늘만 원망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떨어지지 않은 10%의 사과를 정성스럽게 거둬들였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한 후 합격 사과라는 상표를 붙여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물량이 많지 않아 보통 사과에 비해 10배 이상 비싼 가격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특이한 상표에 매료된 소비자들의 구매 요구가 빗발쳤고 사과는 금세 등이 나고 말았습니다. 특히 엄청난 위력의 태풍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합격 사과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런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은 한 순간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시스템을 무한긍정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에 10%만 남았어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우리 안의 무한 감사의 시스템으로 바꾸어놓는 미사가 되어야하고 그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나라에서 열 탈렌트를 가지게 된 종처럼 기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운명하시던 날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임종경을 바쳐드렸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힘이 들어 기도를 조금 멈추었더니 눈도 못 뜨시는 아버지께서 머리를 저 있는 쪽으로 돌리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다시 주위 분들과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것은 주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무한감사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없어서 감사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얼마나 감사한 분인지 기억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부족하게 받은 것에 대한 불평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력하여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8 참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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