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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19.강론. 세계 가난한 이를 위한 날-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9 조회수1,610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태 25,14-30(연중 33 주일): 세계 가난한 이를 위한 날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선포하신 세계 가난한 이를 위한 날입니다. 교종께서는 지난해 11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가난한 이들, 약한 이들,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힌 이들에게 손을 내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며 세계 가난한 이를 위한 날의 제정을 강력히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613, 연중 33 주일인 19일 오늘을 1차 세계 가난한 이를 위한 날로 정하시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합시다.”라는 제목으로 담화문을 발표하셨습니다.

<담화문에>에서는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라는 요한 사도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책무임을 밝히고, 모든 이는 연대와 형제애의 구체적 징표로써 가난한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나눔을 실천하도록 초대받았음을 선언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일이 우리의 책무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1독서>의 훌륭한 아내처럼,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2독서>는 주님의 날이 도둑처럼 덮치지 않도록 빛의 자녀로서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도록 촉구합니다. 이 가난한 이를 위한 우리의 책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탈렌트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먼 길을 떠나면서 자신의 종들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맡기고 떠납니다. 이는 종들에 대한 주인의 믿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믿음의 표시인 이 탈렌트는 주인의 선물임과 동시에 그에 따른 과업(소명)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선물은 잘 보관하라고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하고 베풀라고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곧 달란트(선물)는 이미 열매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종자돈처럼 씨앗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장하고 꽃피워 열매를 맺어야 하는 소명(과업)도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십자가가 질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주어지듯이, 그 탈란트(선물)도 열매 맺기에 충분하게 능력에 따라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와서 셈을 할 때는 그 선물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열매에 따라 대가를 지불합니다. 주인은 먼저 그 대가를 지불하기에 앞서, 달란트를 잘 활용한 첫째와 둘째 종을 착하고 충성스런 종이라,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던 셋째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착하다는 것, 악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에게서 알 수 있듯이, 주인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요, 악하다는 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주인의 선물을 땅에 묻어버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신뢰냐? 아니면 선물을 받은 자신의 신변 안전이냐? 에 달린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착하다는 것은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믿음이요 희망이요 사랑일 뿐 아니라, 자신을 먼저믿어주신 분께 대한 감사요 바침이요 봉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충성스런 태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악하다는 것은 주인을 불신하고 판단할 뿐만 아니라, 주인은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도 않는 데서 모으는 무서운 분, 곧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가는 착취자로 여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게으른 태도를 가지게 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선물에 대한 태도는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태도를 말하며,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태도는 선물에 대한 태도를 불러온 것입니다.

주인은 이렇게 선물에 대한 태도에 따라, 첫째와 둘째 종에게 말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1.23)

 

반면에 셋째 종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5,26-28)

 

그야말로 믿음은 믿음을 낳고 불신은 불신을 낳은 것입니다. 사실, 은총의 선물은 능력에 따라 항상 충만히 주어지지만, 우리는 그 은총을 주는 대로 다 받는 것이 아니라, 받는 만큼만 받게 됩니다. 곧 비워진 만큼만 받게 됩니다. 나누고 비워진 만큼 받게 됩니다.

반면에 선물을 움켜쥐고 있으면 움켜쥔 것마저도 잃게 됩니다. 사실, 그 선물은 애시 당초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선물을 받은 이가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선물을 충실하게 열매 맺는 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믿음에 달려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믿으셨고, 믿으셨기에 능력에 따라 충분한 선물(은총)을 주셨고, 그 선물을 통해 하늘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선물은 주신 분의 뜻에 따라 사용될 때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는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첫째>은총곧 하느님의 사랑, 먼저 주신 사랑이요, <둘째>는 은총에 따른 소명에 응답하여 충실을 바치는 일곧 은총을 열매 맺기 위해 믿음과 사랑으로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은총은 순전히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십자가인 은총에 대한 응답은 우리의 믿음과 충실함에 달려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은총의 열매를 맺을 힘도, 십자가를 질 힘도 함께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은총십자가라는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 이 지상에서 벌어지는 경기의 규칙인 이 둘은 이미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제 우리는 은총 그 자체보다도, 십자가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주신 분께 먼저 신뢰를 드려야 할 일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기 위한 주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은총이나 십자가나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항상, 무슨 일에나,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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