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21) | |||
---|---|---|---|---|
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7-11-21 | 조회수2,312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17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제1독서 즈카 2,14-17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16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7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복음 마태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어렸을 때의 제 모습을 떠올려보면 숫기도 없고 또 자신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 역시 자신 있게 할 수가 없었는데, 그러다보니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 역시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지요. 소위 짝사랑이라는 것을 하게도 됩니다. 숫기 없는 저였지만 저 역시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음에 드는 아이가 생겨서 짝사랑도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마디의 말도 걸어보지 못한 채 마음 앓이만 했습니다. 그 아이의 앞에만 서면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더군요.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려고 기타도 배워보았지만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친한 친구들에게도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친구들은 신학교까지 들어간 제가 이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 역시 성소라고 하면 성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우연히 옛날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벌써 30년 전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 속에는 제가 짝사랑을 했던 여자 아이가 있더군요. 사진 속의 이 아이를 유심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패션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당시 입고 있는 옷과 머리 모양 등이 왜 이렇게 어색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더군요. 또한 그렇게 예쁜 얼굴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마음을 두고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하는 것 역시 변하는 것이 아닐까요? 미녀의 기준 역시 그렇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계 역사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동서양을 대표한다는 절세미인 양귀비, 클레오파트라가 지금의 미녀상과 비교하면 아주 볼품없다고 합니다. 생각과 판단이 무조건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변화되는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변화지 않는 주님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이 찾아오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은 혈연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얼마나 잘 따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실행해 나갈 때,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서 차츰 벗어나 주님의 기준을 따르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 안에서 참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길은 순간순간을 낭비하지 않는 기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기적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마가렛 제임스) 클레오파트라와 양귀비. "감사하는 습관" 어느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반찬으로 돈가스가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병사들이 식당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알고 보니 돈가스를 1인당 2개씩 나누어 준다고 하여 신이 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스가 없다는 이야기에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부식 담당 병사가 실수로 돈가스 한 상자와 소스 한 상자가 아닌 돈가스 두 상자를 가져온 것입니다. 여기저기 병사들의 불평이 들렸습니다. 돈가스만 2개를 먹으란 말이야?" 분명히 어떤 부대에서는 지금쯤 돈가스 없이 소스만 2인분 먹고 있을 거야." 기회가 찾아옵니다. 불평과 감사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 조금만 생각하면 너무나도 많은 감사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만을 바라보면 세상의 어떤 것도 불평의 이유가 됩니다. 그렇다면 불평과 감사 중에 무엇을 선택하는 사람이 행복할까요? 선택할 수 있나 봅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