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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2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23 조회수1,825 추천수9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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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제1독서 2마카 2,16-29

그 무렵

15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이 모데인에서도 제물을

바치게 하려고 그 성읍으로 갔다.

16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그 관리들 편에 가담하였지만

마타티아스와 그 아들들은

한데 뭉쳤다.
17 그러자 임금의 관리들이

마타티아스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성읍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존경을 받는

큰사람이며 아들들과

형제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소.

18 모든 민족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처럼,

당신도 앞장서서

왕명을 따르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 아들들은

임금님의 벗이 될 뿐만 아니라,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부귀를 누릴 것이오.”
19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임금의 왕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20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21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22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23 그가 이 말을 마쳤을 때,

어떤 유다 남자가 나오더니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왕명에 따라 모데인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24 그것을 본 마타티아스는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달려가 제단 위에서

그자를 쳐 죽였다.
25 그때에 그는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도 죽이고 제단도

헐어 버렸다.

26 이렇게 그는 전에

 피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지므리에게 한 것처럼,

율법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27 그러고 나서

마타티아스는

그 성읍에서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나를 따라나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28 그리고 그와 그의

아들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성읍에 남겨

둔 채 산으로 달아났다.
29 그때에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복음 루카 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신부님들과 단식기도회를
처음 함께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사제서품을 막 받았던 해였는데
난생 처음으로 하는 단식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지요.
사실 하루 이틀은 괜찮았지만
사흘째가 되니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배고파서 힘들었을까요?
그보다는 각종 음식 냄새를
참기가 쉽지 않더군요.
코를 심하게 자극하는
음식 냄새를 맡으면서
나중에 단식기도를 마치고나면
꼭 먹어야지 라고 다짐하면서
하루하루를 참았습니다.
먹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아집니다.
 통닭, 떡볶이, 튀김, 불고기 등등....
먹고 싶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났습니다.
단식기도회를 마치고 나서
이 먹고 싶은 것들을
찾아서 먹었을까요?
단식하고 있을 때에는
그렇게 먹고 싶었지만,
막상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그렇게 관심이
가지지 않더군요.
어쩌면 그렇게 먹고 싶었던 것은
먹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막상 맘껏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되면 그러한 관심들이
별 것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람들은 재산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인정받지 못해서
힘들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주어진다고 한들
과연 행복할까요?
어쩌면 지금 내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하고 또 누리지
못한다는 강박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면
분명히 별 것 아닌 것이 됩니다.
실제로 무엇인가에 집착하면
다른 것들에 대한 관심은
급속하게 떨어지게 되지요.
저는 자전거 타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신부님들과 함께 볼링에
 빠지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볼링을 매일같이 치다보니
 관심이 자전거에서 볼링으로
바뀌면서 자전거 타는 것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더군요.
이 점을 생각하면서 이 세상 것에
대한 관심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바로 세상 것이 아닌
주님께 관심을 갖는데
온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폐허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는 것을 미리 보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차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가 아닙니까?
 어떻게든 죽음을 겪으면서
주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우리인데 굳이 이스라엘의
 멸망에 우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의 눈에 감추어져 있는
것들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가올 마지막 순간을 바라보지
못하면서 이 세상 것들에 대한
관심과 집착으로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구원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무엇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까요?
세상의 것이 아닌 주님의 뜻과
사랑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관심을 두게 될 때,
세상의 것은 별 것
아닌 것이 될 것입니다.
성공을 결정하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즐기고 싶은가?’
가 아니라
 ‘나는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
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고통과 시련이 널려 있다.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고 있나요?"
사막 교부 중에 기원 후
 5세기경에 활동했던
압바 아가톤이 계십니다.
사막에서 수도생활을 하는
그에게 다른 수도승이
찾아와서 말합니다.
“당신이 간음한 자이고
교만한 자라고 일컬어지는
그 아가톤이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이 항상 엉뚱한
말을 하는 그 아가톤이오?”
“맞습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이단자 아가톤이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나는 이단자가 아니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묻습니다.
“어째서 우리가 당신에게
 던진 모든 모욕은
받아들이면서도
이 마지막 모욕만은
거부했는지 말해주시오.”
“앞선 비난들은 내 영혼에
유익하기 때문에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단은 하느님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되고 싶지 않습니다.”
아가톤의 말을 보면서,
하느님과 분리되는 것을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느님과
상관없는 것들에 더 많이
 집중하고 있지 않나요?
다른 이들로부터 약간의
부정적인 말만 들어도
어떻게든 복수하려는
마음을 간직하지요.
이로써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일치만을
 염두에 둔다면
어떤 부분에서 거부해야
할지가 명확해집니다.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고 있나요?
압바 아가톤에 관한 일화
하나를 더 전해드립니다.
압바 아가톤은 자기가 본
어떤 것을 판단하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답니다.
“아가톤, 판단하는 것은
네 일이 아니다.”
이렇게 판단을 내 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늘
그의 영혼은 고요했다고 합니다.
어느 음식점 식당 주인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글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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