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전례상징’] 전례에서의 동작과 자세 언제부턴가 ‘한류(韓流, Korean Wave)’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고, 드라마, 영화, 음악, 음식, 패션, 화장품, 관광, 무술, 산업 등에서 대한민국의 문화가 세계에 알려지는 현상이 점점 범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인들의 예의범절이 돋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세계적인 흥행을 일으켰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이정재 씨는 미국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환호 속에 등장하여 활짝 웃는 얼굴로 제자리에 선 채 관객들을 향해 깊이 허리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이를 본 해외 누리꾼들은 이 한국식 인사에 ‘겸손과 친절을 갖춘 행동’이라며 극찬했습니다. 이렇듯 동작과 자세는 말 이외에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 소통의 매개체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문화적인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통일되고 일관된 동작과 자세를 전례에서 사용했습니다. 이 동작과 자세를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은총과 말씀을 내려받고, 또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청원을 드리는 소통의 상하운동을 합니다. 머리는 절, 손은 십자성호, 무릎은 무릎 꿇음과 연결하여 그 의미와 전례에서의 활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느님께는 흠숭을, 다른 대상에게는 공경과 영애를 드리는 절! 인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인사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몸을 굽히기, 악수하기, 미소 짓기 등은 원칙적으로 몇 마디 말이나 또는 한마디 말을 덧붙임으로써 그 뜻이 강화되기도 합니다. 신약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은 나자렛의 마리아 집에 나타나 그분께 격식을 갖추어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라고 인사했습니다. 전례에서 “절은 어떤 이나 그의 표상에 공경과 영예를 드림”(로마미사경본 총지침 이하 ‘총지침’, 275항)을 뜻하며, 허리를 굽히는 깊은 절과 고개를 숙이는 절 두 가지가 있습니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사제는 복사들과 함께 입당 행렬을 하여 제단 앞에 이르러 제대에 깊은 절을 합니다. 이 깊은 절은 신경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 부분(총지침, 136항 참조), 축성된 빵을 거행한 다음, 성작을 거양한 다음, 그리고 영성체하기 전에도 합니다(총지침, 274항 참조). 깊은 절은 하느님에 대한 지극한 흠숭을 드러내는 동작이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입당 때를 제외하고는 무릎 절을 하지만, 한국교회는 무릎 절을 깊은 절로 대신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절은 “하느님의 세 위격을 한꺼번에 부를 때, 그리고 예수님이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이름을 부를 때, 어떤 성인을 공경하여 거행하는 미사에서 그 이름을 부를 때”(총지침, 275항 ㄱ) 합니다. 그래서 영광송에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부분에서 고개를 숙이지요. 삼위일체 하느님을 통하여 구원되었음을 고백하는 십자성호! 전례 학자인 로마노 과르디니(1885-1968)는 “영혼은 몸의 모든 선과 자태와 움직임에서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얼굴과 손을 영혼의 뛰어난 도구이며 거울”이라고 말합니다. 때때로 손짓 하나가 주는 의미가 상당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로마노 과르디니의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전례 상징에 관한 책인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의 저자인 에곤 카펠라리는 많은 종교에서 “손은 하느님을 지향하고,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을 드러내는 표현”이라 했습니다. 로마 제국에서 죄인에 대한 사형 도구였던 십자가가 “하느님의 어린 양”(요한 1,29)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달리시면서 ‘구원의 도구’로 바뀌었음을 아실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우리 주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셨음을 믿고 고백한다는 의미입니다. 로욜라 이냐시오 성인의 십자성호에 대한 말씀은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성호를 그을 때 손가락을 우선 이마에 댑니다.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으신 하느님 아버지를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몸에 손가락을 댑니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낳음을 받으시고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의 몸 안으로 내려오신 우리 주님, 성자를 의미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손가락을 양어깨에 댑니다. 이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러고 나서 손을 다시 모으면 이는 세 위격께서 하나의 본체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들어가 몸을 굽혀 경배드리세. 우리를 만드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시편 95,6) 한국 성당에서 80년대까지는 있었는데, 지금은 찾기 힘든 것이 장궤틀입니다. 이젠 고해소에서 겨우 찾을 수 있습니다. 13세기부터 보편적인 기도 자세 중의 하나로 자리 잡은 무릎을 꿇음은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을 잘 드러내는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 앞에서 몸을 굽히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지요(요한 13,5 참조). 이러한 동작은 인간을 향해 예수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태도를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시편의 다음 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이 동작이 주님께 경배를 드리고 겸손을 표하는 자세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들어가 몸을 굽혀 경배드리세. 우리를 만드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시편 95,6) 미사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나 자리가 좁거나 사람이 너무 많거나 다른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성체 성혈 축성 때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총지침, 43항)고 말합니다. 중요한 성변화의 순간에는 가장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교우들이 전례 중에 가장 오랫동안 취하는 자세는 서 있는 자세와 앉은 자세입니다. 서 있는 자세는 긴장하고 깨어 있으며 환호하며 준비된 자세입니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동쪽을 향하여 서서 양팔을 들고 기도했다고 하며, 이는 카타콤바의 벽화 ‘기도하는 사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청하고 묵상하기에 적절한 앉은 자세는 말씀 전례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전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통일된 동작과 자세는 “거룩한 전례에 모인 그리스도교 공동체 구성원이 이루는 일치의 표지”이며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표현해 주고 길러 줍니다(총지침, 42항 참조). 이렇듯 몸이 취하는 동작과 자세를 통해서 전례 회중은 가장 높은 공경과 흠숭을 드러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3월호,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