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그리스도왕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26 조회수2,226 추천수7 반대(0)

지난 수요일에 꾸르실료 동기모임이 있었습니다. 199211월에 함께 꾸르실료 체험을 했으니 올해는 25년이 되는 해입니다. 30살이었던 저는 55살이 되었고, 50대였던 분들은 모두 70이 넘으셨습니다. 한 모임이 25년을 이어가는 것은 남모르게 헌신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사를 기획하고, 응답 없는 문자를 계속 보내고, 오지 않는 사람들까지 이해해주는 넓은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건강이 허락되는 한 일 년에 한번이라도 함께 미사를 드리고, 나눔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은 그날 나누었던 글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한 정원사가 있었습니다. 정원사는 누가 보지 않아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다른 정원사들이 있었지만 그 정원사가 가꾸는 정원은 늘 꽃이 만발하고, 새들이 찾아왔습니다. 정원의 주인은 정원사를 불러서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정원사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정원의 주인은 정원사의 성실함과 열정에 감동을 받았고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습니다. 그 정원사는 훗날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가 되었던 미켈란젤로였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노년에 교황님께서 작품을 의뢰하였습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뒤에 벽화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최후의 심판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의 가장 구석에서 몇 달 동안 색을 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님 그 구석은 아무도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구석에까지 몇 달 동안 색을 칠하느라 고생을 하십니까?’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곳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알고, 하느님께서 아시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그려야지.’ 제자들은 스승의 이야기를 듣고 더욱 더 스승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계명을 지키지 않았고, 누군가를 미워했던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일에 대해서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아시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일의 마무리를 대충하고 한잔하러 갈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일에 대해서 직장의 동료들은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하느님께서 아시고, 나 자신이 아는 것입니다. 핑계를 대고 꼭 가야할 모임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시고, 나 자신이 아는 것입니다. 남을 속여서 부당한 이익을 취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아시고, 내가 아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지은 죄를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아시고, 나는 아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들의 꽃처럼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아시고, 본인은 아는 것입니다. 남모르게 오랫동안 선행을 했던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아시고, 본인은 아는 것입니다. 자신을 헐뜯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해 주는 분도 있습니다. 상대방은 모르겠지만 하느님께서 아시고, 본인은 아는 일입니다. 자녀들이 많은 형의 처지를 생각해서 자신의 논에 있는 볏단을 형님의 논에 갖다 놓은 동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하늘의 달이 알고, 별이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결혼한 동생을 위해서 자신의 논에 있는 볏단을 동생의 논에 갖다 놓은 형이 있습니다. 역시 바람이 알고, 구름이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보상을 받으면 하느님께로부터 받을 보상이 적습니다.” 선행도, 봉사도, 희생도 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교만이 함께하면 빛이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참된 행복을 느꼈고, 신분과 계급의 벽에 막혀서 답답하던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앞에 모든 이가 한 형제요 자매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라면 몸이 아픈 병자들도, 장애인으로 태어나 멸시를 받았던 사람들도, 죄인이라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들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축복임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아픈 것도, 장애인이 된 것도, 멸시를 받던 것도,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것도 모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기 위한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삶이 파격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것 자체가 파격입니다. 왼 뺨을 때리면 오른 뺨을 내어주라는 말, 친구가 오리를 가자면 십리까지도 가주라는 말,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는 말,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말은 바로 파격입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은 이해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교회를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을 생각합니다. 교회는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 생각합니다. 지금 아프고,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교회와 신앙인들은 바로 예수님을 친구로,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는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신앙인들이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지금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 병든 이들을 외면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늬만 교회요, 겉모습만 신자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 이상 더 명확한 말도 없습니다.

 

전례력으로 우리는 한 해를 마감하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올 한해를 돌아 볼 수는 있습니다. 나의 발자국이 누구와 함께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난 한이, 병든 이, 굶주린 이와 함께한 발자국이었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과 함께한 삶이었고, 그 길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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