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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26.강론.(그리스도 왕 대축일): 수도원 건축기금 마련을 위한 미사 강론-파주 올리베따노 .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26 조회수1,698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태 25,31-46(그리스도 왕 대축일): 수도원 건축기금 마련을 위한 미사 강론

 

+ 찬미예수님! 평화를 빕니다.

무엇보다 먼저,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미사를 함께 봉헌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본당 신부님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들 드리며, 이곳 쌍촌3동 본당의 모든 분들께 주님의 축복과 평화를 빕니다.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주일입니다. 알파요 오메가이신 모든 세기의 왕이신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맞아, 우리는 마지막 때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복음>으로 들었습니다.

심판에 대한 이 말씀은 우리의 마지막 날을 대비하게 해주며,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우쳐줍니다. 그래서 김준엽 시인의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이란 시가 떠오릅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자신 있게/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나는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가족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부끄러움이 없느냐'고 나에게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반갑게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가족의 좋은 일원이 되도록/

내 할 일을 다 하면서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나는 힘주어 대답하기 위해/ 지금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사회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내 마음 밭에서/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겠습니다.

 

이 시를 쓴 시인이 중증 뇌성마비 환자로, 손가락 하나조차도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한 참담한 현실 속에서 입에 펜을 물고 쓴 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내용이 더욱 더 절절해집니다.

이 시에서 핵심어는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그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을 하겠습니다.”라고 반복된 내용에 들어있는, 지금 나는 ~을 하겠습니다.”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께서 산상설교 마지막 장면에서 결론처럼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때 우리는 맞이할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기도나 신비체험이나 관상이 아닙니다. 기적이나 예배나 성사나 봉사활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사랑의 실천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서, 발타살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받는 기준은 그가 얼마나 종교적 체험을 했느냐?’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느님과 이웃을 얼마나 많이 사랑했느냐?’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심판에서, 처벌을 받은 왼 편의 사람들은 큰 범죄나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사랑에 소극적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곧 사랑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구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죄를 짓지 않는데 있는 것이라기보다,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구체적으로 말해줍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주님께서는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당신의 형제라고 부르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해준 것이 당신에게 해준 것이라고 하십니다. 곧 작은이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요한 4,20)

 

오늘, 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눈에 보이는’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기 와 있습니다.

저희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은 2년 전에 창설된 조그만 공동체입니다. ‘기도말씀에서 샘솟는 기도’(렉시오 디비나)를 세 기둥으로 하여 살아가는 수도회입니다. 하지만 수도회는 있어도 아직 수도원이라는 집이 없어, 연립주택에서 월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주님의 축복과 많은 이들의 도움에 힘입어, 지난 7월에 수도원 건축을 시작하여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건축공사를 해오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집은 우리의 힘이나 열성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무지와 무능력과 허약함을 깨우쳐주었습니다. 당신이 자리를 주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없고, 받쳐주지 않으면 기둥을 세울 수도 지붕을 올릴 수 없도 없습니다.  안전으로 보살펴주는 주님의 손길이 없이는, 또 당신이 일하는 사람을 보내주지 않으면, 그들의 기술과 재능을 주지 않으면, 거기에 들어가는 재화를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이끌어 나가시는 주님의 섭리와 활동을 가르쳐주었으며, 주님께 대한 의탁과 믿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은인들의 지원과 기도의 은혜를 깨우쳐주었고, 그동안 산속에만 정주하면서 세상과 멀어져 있던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사랑의 유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추가비용은 늘어나는데, 아직도 여전히 공사비를 마련하지 못하여 많은 곤경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오늘 <복음>작은 이의 모습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주님의 손길과 여러분의 호의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주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고, 여러분의 정성과 도움이 수도원의 지붕이 되고, 여러분의 호의와 지원이 작은이들이 머물 수 있는 손님방 한 칸의 벽면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희 수도원은 정주수도원으로 사도직이 없이 기도하고 일하는 공동체생활을 하는 수도원이라서 본당에서 형제자매님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모금은 더 힘듭니다. 그런데 본당신부님의 제안으로 지난 8월부터 한 달에 두세 번씩 5개월 동안, 아직 세 차례 남았습니다마는 이곳 본당에서 렉시오 디비나강의를 하게 되었고, 신부님의 배려로 이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신부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 주님의 자비에 힘입어,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호의와 도움을 간청 드립니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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