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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27 조회수1,734 추천수3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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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제1독서 다니 1,1-6.8-20

1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통치 제삼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2 주님께서는 유다 임금

여호야킴과 하느님의 집

기물 가운데 일부를

그의 손에 넘기셨다.

 네부카드네자르는

그들을 신아르 땅,

자기 신의 집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기물들은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넣었다.
3 그러고 나서 임금은

내시장 아스프나즈에게

분부하여,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다.

4 그들은 아무런

흠도 없이 잘생기고,

온갖 지혜를 갖추고

 지식을 쌓아 이해력을

지녔을뿐더러,

왕궁에서 임금을

모실 능력이 있으며,

칼데아 문학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5 임금은 그들이 날마다

먹을 궁중 음식과

 술을 정해 주었다.

 그렇게 세 해 동안

교육을 받은 뒤에

임금을 섬기게 하였다.
6 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다.

8 다니엘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자기가

더럽혀지지 않게 해 달라고

내시장에게 간청하였다.
9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

내시장에게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 주셨다.

10 내시장이

다니엘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 주군이신

임금님이 두렵다.

그분께서 너희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정하셨는데,

너희 얼굴이 너희 또래의

젊은이들보다 못한 것을

보시게 되면,

너희 때문에 임금님

앞에서 내 머리가

 위태로워진다.”
11 그래서 다니엘이

감독관에게 청하였다.

그는 내시장이 다니엘과

하난야와 미사엘과

 아자르야를

맡긴 사람이었다.
12 “부디 이 종들을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십시오.

저희에게 채소를

주어 먹게 하시고

또 물만 마시게 해 주십시오.

13 그런 뒤에 궁중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과 저희의

용모를 비교해 보시고,

이 종들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14 감독관은 그 말대로

열흘 동안 그들을

시험해 보았다.

15 열흘이 지나고 나서 보니,

그들이 궁중 음식을 먹는

어느 젊은이보다 용모가

 더 좋고 살도 더 올라 있었다.

 16 그래서 감독관은

그들이 먹어야 하는

음식과 술을 치우고

줄곧 채소만 주었다.
17 이 네 젊은이에게

하느님께서는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다.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18 젊은이들을 데려오도록

임금이 정한 때가 되자,

내시장은 그들을

 네부카드네자르

앞으로 데려갔다.
19 임금이 그들과

이야기를 하여 보니,

그 모든 젊은이 가운데에서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만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임금을 모시게 되었다.
20 그들에게 지혜나

예지에 관하여

어떠한 것을 물어보아도 

그들이 온 나라의

어느 요술사나

주술사보다 열 배나 더

낫다는 것을 임금은

알게 되었다.

복음 루카 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어느 연구소에서
쥐의 생존력 실험을 했습니다.
한 곳은 완전히
깜깜하게 만든 뒤에
 큰 통에 물을 가득 담아 놓고서
쥐를 빠뜨렸습니다.
익사하기까지의 시간을
재는 것이었지요.
이렇게 암실 같이 어두운 통에
빠진 쥐는 3분을 넘지 못하고
익사했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는 한 줄기
빛을 통에 비추었습니다.
빛이 들어오는
통 안에 빠진 쥐는
자그마치 36시간이나
살아 있었다고 하네요.
잔인한 실험이지만,
그래도 이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희망이라는 것이지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음식 없이 40일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 없이 4일을
살 수 있습니다.
공기 없이 4분 이상을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으면
단 4분도 견딜 수가
없다고 하네요.
 한 줄기 빛, 한 모금의 물이
상징하는 희망만 있어도
어려운 시련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희망을
간직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십니까?
어렵고 힘든 일이
계속해서 찾아오면
이런 말씀들을 종종 하시지요.
“희망이 없어.”
구기경기 종목에서 사용하는
공들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밋밋하게 생긴 공이 없습니다.
 야구공은 실밥으로 되어 있고,
골프공도 곰보처럼 홈이
많이 패어 있습니다.
그 밖의 다른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공들을 생각해보면
대부분 반듯하게 매끈한 공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야 쳤을 때 더 멀리
날아가고 손으로 잡기에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거의 모든 공이
 상처투성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처가 있어서
쓸모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아픔과
상처 역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을 간직하면서 앞을 바라보면
분명히 자신의 어렵고 힘든 삶도
인정하게 되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빈곤한 과부의 모습을
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가 봉헌한 돈은 렙톤
두 닢이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얼마 되지 않는 푼돈이었지요.
그러나 이 과부에게는 하루를
생활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두
봉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느님 아버지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삶이라
불평불만을 던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하루를 굶더라도 하느님께
예물을 봉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을까요?
약간의 어려움 속에서도
불평불만으로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희망을
간직하면서 당신 앞으로
나오는 사람을
쁘게 받아주십니다.
무조건 잘될 거라는
낙관이 아니라,
‘일어나 버린 일은
항상 잘된 일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면
 어느 상황에서든
 배울 수 있습니다.
(법륜)
가난한 과부의 헌금.
"나의 삶을 객관화시켜보세요."
어제의 하루를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좋은 하루였습니까?
하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분명히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수치화시켜보십시오.
좋은 쪽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더 나갔다면 설령 다른 쪽에
나쁜 일이 일어났다 해도
결과적으로 좋은 하루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객관화시키지
못해서 괴로움 속에 갇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것들은 다 객관화시켜서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정작 내 자신에게 닥친 일에
대해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나쁜 쪽으로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쁜 일만 있었던
경우는 분명히 없습니다.
소소한 기쁨을 주는 좋은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것이든
객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분명히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좋은 일을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말입니다.
주님께 대한 희망은 우리 주위를 밝게 만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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