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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28 조회수1,60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7년 11월 28일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제1독서 다니 2,31-45

그 무렵 다니엘이

네부카드네자르에게 말하였다.
31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무엇인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큰 상이었습니다.

그 거대하고 더없이 번쩍이는

상이 임금님 앞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시무시하였습니다.
32 그 상의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청동이며,

33 아랫다리는 쇠이고,

발은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34 임금님께서

것을 보고 계실 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떨어져 나와,

쇠와 진흙으로 된 그 상의

발을 쳐서 부수어 버렸습니다.
35 그러자 쇠, 진흙, 청동,

은, 금이 다 부서져서,

여름 타작마당의 겨처럼

되어 바람에 날려가 버리니,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을 친 돌은

거대한 산이 되어

온 세상을 채웠습니다.
36 이것이 그 꿈입니다.

이제 그 뜻을 저희가

임금님께 아뢰겠습니다.
37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임금들의 임금이십니다.

하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께 나라와

권능과 권세와

영화를 주셨습니다.

38 또 사람과 들의

짐승과 하늘의 새를,

그들이 어디에서 살든

다 임금님 손에 넘기시어,

그들을 모두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임금님께서

바로 그 금으로

 된 머리이십니다.
39 임금님 다음에는

임금님보다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청동으로 된

 셋째 나라가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40 그러고 나서 쇠처럼

건한 넷째 나라가

생겨날 것입니다.

쇠가 모든 것을

부수고 깨뜨리듯이,

렇게 으깨 버리는

쇠처럼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고 깨뜨릴 것입니다.
41 그런데 일부는

 옹기장이의 진흙으로,

일부는 쇠로 된 발과

발가락들을

임금님께서 보셨듯이,

그것은 둘로 갈라진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쇠와

옹기 진흙이 섞여

 있는 것을 보셨듯이,

쇠의 강한 면은

남아 있겠습니다.
42 그 발가락들이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

된 것처럼 그 나라도

한쪽은 강하고

다른 쪽은 깨지기가

쉬울 것입니다.
43 임금님께서 쇠와

 옹기 진흙이 섞여

있는 것을 보셨듯이

그들은 혼인으로

 맺어지기는 하지만,

쇠가 진흙과 섞여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서로

결합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44 이 임금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느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터인데,

그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그 왕권이 다른 민족에게

넘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어 멸망시키고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45 이는 아무도 돌을

떠내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산에서 떨어져 나와,

쇠와 청동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수는 것을 임금님께서

 보신 것과 같습니다.

 위대하신 하느님께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임금님께

알려 주신 것입니다.

꿈은 확실하고

그 뜻은 틀림없습니다.” 

복음 루카 21,5-11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예전에 인터넷 안에서

경품 사이트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각종 쇼핑몰에서는 행하는

경품에 자동적으로 응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지요.

‘공짜’라는 말에,

그리고 약간의 노력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에 열심히 이 경품

사이트를 이용했습니다.

 실제로 몇 개의

경품에 당첨되어서

물건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일어났습니다.

글쎄 엄청난 광고 메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었지요.

실제로 이 광고 메일이

너무 많아서 메일을 확인하지

않다보니 반드시 봐야 할 중요한

메일을 확인하지 못해서

낭패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좋은 물건도 아니고,

 제게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공짜로 얻으니 이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이득이 아니라

손해만 가져왔습니다.

사소한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 대니얼

길버트는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을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로또가 주는 행복의

효과가 평균 3개월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출세의 꿈을 이룬 사람 역시

평균 3개월이 지나면 예전과

똑같은 크기만큼 행복하거나

불행해지며,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평균 3개월이

지나면 다시 웃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쾌락의 쳇바퀴’

라고 이름 붙였지요.
행복의 길을 찾고 있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행복을 위해서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놓치면서

잠시만의 행복만을 가져다주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몇몇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을

가리키면서 그 영광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시지요.

사실 이 세상의 것 중에서 무엇을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우리들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지 않습니까?

재산, 지위, 명예 등등

절대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것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주님만이 영원하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이 세상의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각종 표징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이나 각종 자연재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표징들로 통해

우리는 이 세상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항상 그 다음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첫 번째 자리에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뜻에

맞게 살 수 있으며,

이로써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장 중대한 실수는

조급함 때문에 일어난다.

(마이크 머독)

어제 동창모임이 있었습니다.

"슈바이처와 까뮤"

(‘따뜻한 하루’ 중에서)

프랑스에는 ‘알베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 한 명은 알베르트 까뮈

(Albert Camus)이고,

다른 하나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입니다.

두 분 모두 아주 유명한

삶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우선 까뮈는 ‘이방인’,

‘시지프스의 신화’

‘반항적인 인간’

 ‘오해’ ‘계엄령’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슈바이처는 프랑스

식민지인 가봉에 건너가서

원시림 속에 병원을 세우고

그곳 원주민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봉사로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한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남긴 것은

아주 달랐습니다.
까뮈는 노벨 문학상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좋은 별장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여생을

 즐기며 편안히 살던 중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었지요.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

상금으로 아프리카 밀림

지대에 나병 환자를 위한

병원과 수용소를 세우고

그곳에서 일생을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지금 모두 이 세상을

떠난 인물이지만,

이들의 별장과 병원은

아직도 남아있지요.

그렇다면 어떤 곳이

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존경의 마음을 갖게 할까요?

이 점을 생각하면서 과연

내 자신이 이 세상에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남긴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 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계란후라이와 스팸을

따라올 안주는 없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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