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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2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29 조회수2,074 추천수4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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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9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제1독서 다니

5,1-6.13-14.16-17.23-28

그 무렵

1 벨사차르 임금이

천 명에 이르는 자기

대신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벌이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2 술기운이 퍼지자

벨사차르는 자기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물들을 내오라고

분부하였다.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시려는 것이었다.
3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

곧 하느님의 집에서 가져온

금 기물들을 내오자,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4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하였다.

5 그런데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촛대 앞 왕궁 석고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임금은 글자를 쓰는

 손을 보고 있었다.

6 그러다가 임금은

얼굴빛이 달라졌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이다.

허리의 뼈마디들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

13 다니엘이 임금

앞으로 불려 왔다.

임금이 다니엘에게 물었다.

 “그대가 바로 나의 부왕께서

 유다에서 데려온 유배자들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인가?

14 나는 그대가 신들의

영을 지녔을뿐더러,

형안과 통찰력과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다는 말을 들었다.
16 또 나는 그대가

뜻풀이를 잘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그대가 저 글자를 읽고

그 뜻을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면,

그대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고 이 나라에서

셋째 가는 통치자로 삼겠다.”
17 그러자 다니엘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선물을 거두시고

 임금님의 상도

다른 이에게나

내리십시오.

 그래도 저는 저 글자를

임금님께 읽어 드리고

그 뜻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

23 하늘의 주님을 거슬러

자신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주님의 집에 있던 기물들을

임금님 앞으로 가져오게

하시어,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찬양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손에 잡고 계시며

임금님의 모든 길을 쥐고

계신 하느님을 찬송하지

않으셨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손을 보내셔서 저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25 그렇게 쓰인 글자는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

26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27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28 ‘프레스’는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복음 루카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몇 년 전, 제가 교구

성소국장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성소국장이다 보니 예비신학생과

신학생들과 자주 면담을 하게 됩니다.

한 예비신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학교는 정말로 아름답고

좋은 곳 같아요.

그 안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행복해요.”
그리고 성소자가 부족하다는 말에,

이렇게 좋은 곳을 가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신은

이 신학교에 정말로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학생은

자신의 바람대로 신학교에

합격해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안에서

생활을 하는데, 도중에

스스로 신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학생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신학교를 그만두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정말로 천국 같은 멋진 곳인데,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닐까요?”
제가 갑곶성지에 오고 나서

얼마 뒤에 이 학생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서 복학을 했지만

얼마 못가서 스스로

그만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학교가 좋고

멋지다고 말했던 학생이었는데

왜 그만두었을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신학교 안에서의 행복보다

 더 큰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전에 이런 학생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 역시 정말로 신학교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만 두기 직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학교가 감옥처럼 답답해.

너무 끔찍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

행복하지가 않아.”
문제는 장소가 아닙니다.

 바로 자신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름으로 인해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하는데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지요.

당시 이 말을 듣고 있었던

사람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박해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었던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참 행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인내로써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세상의 것들을 쫓는 마음에서

주님을 찾는다면 결국 조금의

고통과 시련에서도 주님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주님과 함께

하려는 마음, 그 굳은 믿음이

참 행복을 얻게 할 것입니다.

승자의 하루는 24시간이고

 패자의 하루는 23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J. 하비스)

주님 안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안의 고민과 어떻게

맞설 것인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민이나

걱정거리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형태는 어떠합니까?

참으로 다양합니다.

언뜻 비슷해 보여도 사람마다

체험하는 것에 따라서

다른 형태를 보입니다.

특히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우리의 고민과

걱정거리의 수를 늘려줍니다.
이러한 고민과 걱정거리를

갖지 않아야

 행복하다고는 말하지만,

갖지 않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이러한 고민과

걱정거리에

끙끙대는 시간에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상상하고 실제로

 행하면 된다고 하네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까?

이 힘으로 우리는 고민과

걱정거리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금 힘들어하시는 모든 분들,

 “화이팅!”하면서 힘내십시오.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민이나

걱정거리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형태는 어떠합니까?

참으로 다양합니다.

 언뜻 비슷해 보여도 사람마다

체험하는 것에 따라서

 다른 형태를 보입니다.

특히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우리의

고민과 걱정거리의 수를

늘려줍니다.
이러한 고민과 걱정거리를

갖지 않아야 행복하다고는

 말하지만, 갖지 않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이러한 고민과

걱정거리에 끙끙대는

시간에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상상하고

실제로 행하면 된다고 하네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까?

 이 힘으로 우리는

고민과 걱정거리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교사모집공고.

본당에서는 봉사자 부족이 고민이고

걱정거리라면서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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