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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30 조회수2,807 추천수11 반대(0)

지난 주일에는 마치 제가 마르타가 된 것 같았습니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서 조용히 있고 싶었습니다. 몸도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오래전부터 약속되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전주교구 복자성당에서 특강이 있었습니다. 장충동 분도회관에서 피정 파견미사가 있었습니다. 교구장님의 축일 모임이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가졌던 주님과의 깊은 친교는 없었지만 마르타처럼 분주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전주 역에 도착하니 외삼촌께서 저를 기다려 주셨습니다. 성당에 도착하니 고모부님께서 저보다 먼저 오셔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조카를 위해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강의를 마치니 시골의 형님들, 누님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오늘 강의를 듣는 분들의 상당수는 다른 본당에서 오셨는데 아마도 저를 보기 위해서 오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전주는 저의 고향이기 때문에 고향의 가족들이 많이들 오신 것 같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형님께서 맛있는 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긴 하루였지만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고향을 방문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제게 일을 통해서 고향을 방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쩌다 마르티처럼 바쁜 하루를 보냈지만 늘 분주한 시간을 보내시는 분이 있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시는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이십니다. 지금도 교황님의 미얀마 방문에 함께 하시기 위해서 미얀마에 계십니다.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리면서 제가 곁에서 본 추기경님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추기경님은 소탈하십니다. 교구장이 되신지 5년이 되셨지만 한 번도 축일 행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번에도 교구청 식구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하셨습니다. 격식과 절차를 굳이 따지지 않으십니다. 마치 동네에 사시는 인자하신 어르신 같습니다. 소탈하신 만큼 함께 있는 신부들에게도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저희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고, 지지해 주십니다.

추기경님은 조금 느리신 것 같지만 꾸준히 일을 하십니다. 산행을 하실 때도 천천히 오르시지만 한 번도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탁구를 시작하신지 1년이 조금 넘으셨지만 지금은 상당히 잘 치십니다. 역시 꾸준히 연습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느린 거북이가 빠른 토끼를 앞설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함 때문이었듯이, 한국교회의 어르신이 되신 것도 추기경님의 꾸준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은 기록의 달인이십니다. 서품자들과의 면담도 하나하나 기록하십니다. 저는 그렇게 기록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다음에 면담을 하게 될 경우에는 전에 기록하셨던 노트를 꼭 참조하십니다. 저는 잊고 있었던 일들도 추기경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십니다. 저와 면담을 하셨을 때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적는 사람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앞선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서품자들에게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셨습니다. 학업이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고, 나이가 많은 것이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고, 건강이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고,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것이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나의 욕심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고, 시기와 질투가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습니다.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교구장님의 질문을 듣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서품자들을 보셨다면 아주 흡족했을 것 같습니다. 준비된 사목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아니라, 신학교라는 못자리에서 신학, 영성, 철학을 공부한 신학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사목의 일선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준비한 사목의 그물을 힘차게 던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어 주셨고, 나는 어떻게 응답하였는가?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를 묵상한다면 11월의 마지막을 피정하는 기분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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