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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2.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03 조회수1,978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제1독서 이사

63,16ㄹ-17.19ㄷㄹ; 64,2ㄴ-7

16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시고,

예로부터 당신 이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17 주님, 어찌하여 저희를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희 마음이

굳어져 당신을 경외할 줄

모르게 만드십니까?

 당신 종들을 생각하시어,

당신의 재산인 이 지파들을

생각하시어 돌아오소서.
19 아, 당신께서 하늘을

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이다.

64,2 당신께서

내려오셨을 때

산들이 당신 앞에서

뒤흔들렸습니다.

3 당신 아닌 다른 신이

자기를 고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하였고,

아무도 귀로 듣지

못하였으며,

어떠한 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4 당신께서는 의로운 일을

즐겨 하는 이들을,

당신의 길을 걸으며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당신의 길 위에서 저희가

늘 구원을 받았건만,

5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과 같습니다.

 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6 당신 이름 부르며

 경배드리는 자 없고,

당신을 붙잡으려고

움직이는 자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희를 외면하시고,

저희 죄악의 손에

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7 그러나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제2독서 1코린 1,3-9

형제 여러분,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에 튼튼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8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9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복음 마르 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문득 이러한 의문을 가져봅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가
과연 뱃속에서 나오는 것을
좋아했을까요?
아마 어머니 뱃속에서 어떠한
외부적인 위협이 없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 안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열 달이라는 시간을 채우고
 힘차게 울면서 세상으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이 모습과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모두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많은 분들이 그래도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하면서,
이 세상 안에서 더 오래
머무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 삶 역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면 이곳을
떠나서 하느님 나라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 뱃속이 아무리 좋아도
어쩔 수없이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처럼,
이 세상 삶이 아무리 좋아도
죽음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그러한
나라가 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냐면서 증거가 없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과학자들은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다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없다면,
그것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으로 여긴다고 하더군요.
하느님 나라도 그렇습니다.
존재할 수 없다는 증거를 낼 수
 없다면 우선적으로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
특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머니 뱃속에서 육체적인
성장을 해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이제 이 세상에서는 영적인
성장을 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마르 13,33)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날과 그때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늘 깨어 있으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면서 영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 제1주일을 보냅니다.
성탄절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매년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시간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지금을 나태하게 살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쫓는 데에 연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보다는 오늘 제1독서의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시고,
예로부터 당신 이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고백을
우리 역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 앞에
서게 될 마지막 날을
떠올리며 지금을 충실히
사는 모습입니다.
어느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을
A, B반으로 나누었지요.
그런데 아이들 사이에서 A반은
우수반이고, B반은 열등반이라는
소문이 난 것입니다.
물론 헛소문이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나눠진 뒤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시험을 보니 A반은
성적이 오르고, B반은
성적이 떨어진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희망을 간직한 사람은
만큼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서 희망을 저버린
사람은 어떠한 좋은
결과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우리 신앙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지금을 잘 준비하는 사람은 그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원한 생명’이라는
큰 선물을 말이지요.
이번 대림시기는 예년과 다른
아주 멋진 시간으로 만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이렇게 깨어 있는 모습으로
잘 준비하는 사람만이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게‘
(1코린 1,7 참조)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면

나를 알고

 인간을 알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노)

갑곶성지의 대림초입니다.

"선택에 대해서..."

예전에 여행을 하다가

처음 가 본 동네에서

두 갈래의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가고자 하는 곳이 이 두 길 중에

하나일 텐데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 두 길 모두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느낌 상 맞을 것 같은

오른쪽 길을 선택했습니다.

결과는 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선택에

대해 후회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아무 길이나

가보지 뭐.

헤매기밖에 더 하겠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길을 갔기에

시간의 허비를 가져왔지만

이것 역시 제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내 자신의 선택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틀릴 수 있는 것이니,

 ‘틀리면 어때?’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어떨까요?

철학자 니체의 말이 생각납니다.
“가만히 있으면 뭘 할 수 있는가?

사람은 나쁜 짓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라도 배울게 있다.”
우선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갑곶성지의 특별 프로그램입니다.

함께 해주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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