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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2.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05 조회수1,710 추천수4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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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5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 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복음 루카 10,21-24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지난여름에는

비가 참 자주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밖으로 운동을

나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자전거를 주로 탔는데

비가 올 때에는 자전거 타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물론 끊임없이 비가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땅이 아직 젖어 있어서

미끄러울 거야.’, ‘흙탕물이 튀면

옷이 엉망이 되잖아.’라는

 생각들로 인해서 자전거를

타지 않았던 것이지요.

드디어 맑은 날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려고

꺼내보니 바퀴의 바람이

완전히 빠져있었습니다.

 바람 넣기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 뒤로 미뤘습니다.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전거를 거의 타지 못했습니다.

계속된 핑계와 이유를 붙여서

뒤로 미뤘기 때문입니다.
저의 유일한 취미이고

 즐겨하던 것인데도 계속

미루다보니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일이 되고 맙니다.

지금 힘들어하고 하기

싫은 것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쩌면 이를 즐기지 않고

하나의 일로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복잡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귀찮다,

하기 싫다’ 등의 부정적인

말들이 입 안에서 맴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들이 부정적인

행동을 이끌어서 할 수 없는

 일로 만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힘들고 어려운 것도

가장 즐겁고 행복한 일로

만들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살아가는 모습,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이 세상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지혜롭다는 사람, 슬기로운

사람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고

오히려 부족함이 넘쳐

보이는 철부지 같은 제자들에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와 같은

 종교지도자들은 많은 배웠기에

지혜로웠고 또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슬기롭다고 평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단순하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존경받는 슬기로운 사람이지만,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바치실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기쁨에 넘친

감사의 기도를 하실까요?

어쩌면 끊임없이 복잡하게

생각하고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시고

안타까움에 아무런 말씀도

못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이제 부정적인 말과

행동은 그만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저 기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과

단순함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이유로 충분히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좋아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이 됩시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세요."

인터넷에서 하나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일본의 광고였는데

상당히 큰 울림을

제게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실 안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려보세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은 노란 피카츄,

분홍색의 토끼,

장수벌레 등의 다양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도화지 가득 검은 색만

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친구가 모두 간

텅 빈 교실에서도 계속

도화자미다 검은 색을

칠할 뿐이었지요.

선생님께서는 걱정이 되어서

다른 선생님들께 보여드렸고,

이 그림을 본 다른 선생님들

모두 걱정 가득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학부모 면담을 한 뒤,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계속해서 도화지에

검은색만 칠하는 아이였지요.

의사선생님께서

“무엇을 그리는지

알려줄 수 있니?”

라고 물어도 멈추지 않고

계속 검은색만 칠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사가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 그림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다른 직원들과 함께

검은색으로 칠한 도화지들을

체육관에 가서 맞춰보기

시작합니다.

 이 그림은

퍼즐이었던 것이지요.

이 도화지들을 다 맞추자

이 그림에서 하나의

동물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래’였습니다.

 단순히 검은색 칠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고래를 그리고

있었던 아이였던 것입니다.
큰 그림은 멀리서만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이들을 가까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꿈이 얼마나 큽니까?

그것을 내가 모두 알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큰 교만이고

착각이겠지요.

 따라서 조금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시작점이 아닐까요?

검은색만 칠하는 아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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