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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6.강론.“‘너희에게는 빵이 몇 개나 있느냐?"-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06 조회수1,782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태 15,29-37(대림 1 )

 

대림시기는 자신의 갈망과 마주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화와 사랑과 행복을 향한 갈망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진리와 하느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향한 갈망 속에는 이미 하느님이 계시고, 사랑을 향한 갈망 속에는 이미 사랑이 있습니다. 갈망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새겨놓으신 당신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정 그분 안에서 행복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갈망으로 목마른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 산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군중이 다리 저는 이들과 눈 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마태 15,30)

 

갈망을 품고, 타인들의 손에 이끌려 산 위에 올라와 있는 이들입니다. 스스로 올라오지도 못해 이끌려와 발치에 놓여 있지만,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가슴 속, 당신의 음성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다가와 면전에 나와 있지만,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 안, 당신의 빛을 불어 넣으십니다. 그들의 질병을 치료하시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단지 고쳐주기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마음 속, 깊은 곳도 환히 보시고, 깊이 숨겨진 못 다한 말도 다 들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어 이르십니다.

저 군중이 가엽구나. 벌써 사흘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군중이 치유는 받았지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치유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함을 보셨습니다. 마치, 당신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강도 맞은 사람을 치료해주고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줄 뿐만 아니라 여관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드리겠습니다.”(루카 10,35)라고 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깊고 깊은 사랑의 신비를 보아야 합니다.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먹이시고, 미처 바라지도 못했는데도 이미 용서하시고, 뒷날까지도 가엷게 여기시는 그 저린 마음의 사랑을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을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너희에게는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그러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마태 15,34-35)

 

그렇습니다. 이미 있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단지 주님께서는 그것을 일깨워주시고 확인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에게서 찾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제자들에게는 빵이 이미 일곱 개나 있었습니다. 일곱은 완전함의 숫자입니다. 거기에다가 덧붙여 물고기까지 이미 차고 넘치게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빵이 있습니다. 그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단지 그것을 모르고 있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찾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제자들이 말한 이 광야는 가나안 복지에 이르기 위한 순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광야를 순례하면서, 자꾸만 스스로를 아는 사람인 양 여깁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 순례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만을 찾는 사람”, 그가 진정한 순례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식인 을 찾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떼어서 타인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름 아닌 우리에게 있는 바로 그 빵으로 감사드리셨고, 제자들은 그 빵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 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리는 진정한 양식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말씀의 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성경을 풀이해 주는 것은 빵을 떼어 주는 것과 같다.”고 하였고, 오리게네스는 성경 독서 중에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고 하였습니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는 말씀을 읽는 것은 파스카의 어린 양을 먹는 것이라 하였고, 하느님의 사람 에제키엘은 말씀의 두루마리를 먹었습니다.’(에제 3,3).

분명, 우리는 이 말씀의 빵을 가지고 있으며, 그 외에도 나눌 수 있는 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재능과 기능, 재물과 시간과 자기 자신 등 많을 것입니다. 있는 것을 보는 눈이 바로 감사의 눈이요, ‘있는 것그것을 가치 있게 보는 것이 곧 감격입니다. 우리가 이 빵의 가치를 진정으로 안다면, 우리는 벅찬 감격에 까무러칠 것입니다. 이 은총을 나눌 때, 그것은 이미 은총에 은총일 것입니다.

반면에, 없는 것을 보는 눈은 불평의 눈입니다. ‘있는 것을 없다고 여기는 것은 무지요, ‘있는 것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보지 못하고 또한 찾지 않는다면, 여전히 광야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있지만, 길을 따라 걷는 순례자로, 하느님만을 찾는 사람들(베네딕도의 수도규칙 58,7)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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