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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2.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06 조회수2,19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12월 6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 25,6-10ㄱ

그날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복음 마태 15,29-37

그때에 29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은 바로 ‘비교’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없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지요.

그러나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특정한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구축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SNS)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안에서 하고 있는 많은 말들이

자기 자랑과 남을

비하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비교를 통해 남보다 우위에

있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물론 비교를 통해 개인의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을 갖게 되고,

더 높은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행복의 길로

가는 것이라 말할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

함께 행복해지는

길은 어떨까요?
1995년 10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병원에 산달을 채우지

못한 쌍둥이 자매가

일찍 세상에 나왔습니다.

다행히 언니는 인큐베이터에서

건강을 회복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의료진이 더 이상의

치료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때,

한 간호사가 동생의

 인큐베이터 안에

언니를 함께 넣습니다.

그러자 언니가 동생의

어깨에 자신의 작은

손을 얹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글쎄 동생이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으면서 각종 생명

수치들이 정상수치로

돌아온 것입니다.

 함께 하는 것은 편안함을

가져다주며. 이 자리에

주님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갖가지 병을 앓고

있는 병자들을

주님께 데려옵니다.

병자들 혼자서 왔을까요?

이 병자를 데리고 온

누군가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빵의 기적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누군가가 봉헌한 일곱 개의

빵과 약간의 물고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배불리 먹고서

남은 조각이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필요한 만큼만

먹었다는 것입니다.

남는 것이니까 가지고

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더군다나 이는 주님의 놀라운

기적의 증거가 아닙니까?

나중을 위해서 가지고

가려는 마음도 있을 수 있고,

또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가져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조각이

있다고 하지요. 즉,

필요한 만큼만 헤아려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했기에

님의 놀라운 기적이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병자를

고쳐주신 것,

빵의 기적 모두가 사람들의

함께 하는 모습에서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욕심과

이기심을 통해서는 주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의 기적은 함께

하는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슬픔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른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에 맞서기보다 그것이

우리를 새로운 삶의 순환으로

 이끄는 길에 함께

발맞춰야 한다.

(개리 코왈스키

감동적인 인큐베이터 안의 쌍둥이 자매.

"제자리 지키기"

누구나 잘 하지 못하는 것이

한두 가지는 있을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제 주변에 정말로 완벽해

보이는 신부님이 계십니다.

신학생 때부터 공부, 운동,

그밖에 다른 부분에서도

남다른 모습을 보였지요.

여기에 성실하고 늘 웃으면서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싶었지요.

그런데 우연히 그분의 사제관에

갔다가 못 하는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리정돈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분 역시 자신의

지저분한 방이 부끄러웠는지

이렇게 말씀하세요.
“다른 것은 다 노력하면 되는데,

정리정돈은 도대체 되지를 않네.

이런 모습을 보여줘서

정말로 부끄럽다.”
그러자 다른 것은 잘 못해도

깔끔하기로는 세계 1위라고

부를 정도로 정리정돈을

잘 하는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냥 놓았던 제자리에

두면 되는 거야.

물건들이 자기 자리에

있지 않으니 이렇게

지저분한 것이라고.”
맞습니다. 제자리에 있으면

정리가 저절로 되겠지요.

책이 책꽂이가 아니라

바닥에 놓여 있으니 지저분하고,

쓰레기가 쓰레기통이 아니라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있으니

지저분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삶이 복잡하고 힘들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좋아 보여서 욕심과

이기심을 늘리다보니

어야 할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지저분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주님의 품이 아닐까요?
오늘은 의정부교구

화정동 성당에서

저녁 8시부터

대림 특강을 합니다.

제가 언제 어디서 특강을

하는지 알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이렇게 공지합니다.

화정동 성당에 가까이 사시고,

시간되시는 분들은 오세요.

계속해서 대림특강이네요.

강의하는 제 모습이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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