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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10 조회수2,405 추천수6 반대(0)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낙태죄 폐지에 대한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계기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낙태죄 폐지를 청원하는 사람들이 20만 명을 넘었고, 청와대는 답변하는 과정에서 낙태죄에 대한 새로운 균형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고 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발언을 인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하게 잘못 인용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물론 역대 교황님들은 일관되게 낙태에 대해서 반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말은 못 해도, 몸이 약해서 어머니의 몸에 의지해야 하지만 태아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모두 고귀한 것이고, 생명은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는 것은 필요할 것입니다. 사랑의 행위에는 책임 또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 없이 타인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과 재정적인 지원이 함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상황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낙태를 합법화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품자 면담을 하면서 논문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한 신학생은 논문의 주제가 죽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신학교에 입학하기로 했는데 어머니께서 사실은 낙태할 뻔했다고 얘기해 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미안하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신학생은 자신을 낳아주신 어머니가 무척 고마웠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논문도 사람이 죽음을 결정할 수 없다는 주제로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연중 제33주일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일로 선포하셨고, 작년에는 자비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회칙을 통해서 교회는 약한 이, 가난한 이, 병든 이, 외로운 이, 억울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는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얼마 전 고통 중에 있는 미얀마 로힝야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깊은 위로를 주셨고,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노숙자들은 늘어간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인데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법체류를 한다는 이유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질적으로는 넉넉하지만 영적으로 메말라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죽는 사람, 너무 힘들어서 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꿈을 이야기 합니다.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은 깎아져서 평평하게 되리라.’ 교만과 욕망의 산을 깎아서 겸손과 온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어둠과 절망 그리고 고통과 걱정은 희망과 사랑 그리고 나눔과 봉사로 메워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이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세상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처럼 그런 꿈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서 이사야 예언자의 꿈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제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들이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2000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이것이 언제가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신앙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우리의 행동입니다.

 

사회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들, 누군가가 도와주어야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희망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들 모두가 하느님을 닮은 소중한 모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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