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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김웅렬신부(감사)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19 조회수2,568 추천수1 반대(0) 신고

 

"감사"

 +찬미예수님

 교우들이 세례 받을 때까지는

비슷비슷하다가 세례를 받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눠져요.

어떻게 나눠지느냐?

종교인과

신앙인으로 나뉩니다.

본인이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종교인인 것 같아요?

신앙인인 것 같아요?

각자가 답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종교인과 신앙인은 적어도

3가지가 다릅니다. 

첫째, 감사를 어떻게 하고

살아가느냐가 다릅니다.

종교인은

감사할 때만 감사해요,

즉, 감사할 일이 생기면

그냥 감사해요.

그런데 신앙인은

감사할 것이

눈곱만큼도 없어도

미리 당겨서 감사해요.

내가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했는가,

아니면 캄캄한

고통 속에서도 정말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았는가,

우리가 어느 쪽인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가 교만한 것을

인정하느냐가 다릅니다.

종교인은 자기가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하느님께

회개하는 것도 보면 가슴을 찢는

이야기를 한 번도 못 해봐요.

신앙인은 자기 교만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늘 죄인임을 인정하기에,

그야말로 성경에 나온 대로

재위에 앉아 가슴을 찢고

마음을 찢으며 눈물로 통회해요.

마지막 세 번째로

맺는 열매가 다릅니다.

종교인은 쭉정이만 맺어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열매만 맺습니다.

그저 듣기는 좋은 말만

들으면서 한평생을 살지만

성당 안에서만 성인이고

귀가 거룩하고

입이 거룩할 뿐,

성당 나가면 세상생각

똑같이 하고 살아요.

그러다보니까 이방인들에게

늘 손가락질을 당해요.

‘아이구, 성당에서 뭐

열심하다면서 우째?’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입 싼 인간이 누군지 알어?

저 성당 다니는

저 인간이야’라고요.

신앙인은 말씀을 들으면

‘오늘 내가 들은 것 중에서

저거 하나 만큼은 꼭 열매를

맺어야 되겠다.’하면서,

기를 쓰고

열매를 맺으려고 해요.

이쪽 귀로 들어와서

저쪽 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서 1장 22절 말씀대로

 그저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끌어내려서 절절히

느끼고 느낀 것을 행동으로 옮겨요.

이것이 바로 신앙인이에요

오늘 미사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 미사입니다.

그리고 또한 추수감사미사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추수할 것이고

무엇에 대해 감사할 것입니까?

종교인과 신앙인을 구분하는

 첫 번째가 무엇이라고요? 감사!

종교인은 감사할 일이

 생겨야만 감사하고

참 신앙인은 감사할 것이 없어도

당겨서 감사한다했습니다.

절대로 당기면

 안 되는 것이 돈이지만,

런데 감사는 꼭 당겨야 해요.

강원도에 가면 ‘감사 공소’가

하나 있는데, 공소 가운데

 유일하게 동네 이름을

따르지 않았어요.

왜냐?

6.25 때 미국 군종

신부님이 같이 가던 부대랑

떨어져 산 속을 헤맸대요.

그렇게 헤매다 날은 저물고

저 밑에 다 쓰러져가는

움막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더래요

‘이제 살았다’ 하며

문을 열려고 하다가,

또 모르잖아요?

그 안에 인민군이 있을지.

전쟁 중인데.

가만히 그 집 안을 보니

십자가 고상이 보여

 ‘진짜 살았다!

교우집 인가보다’ 했대요.

그런데 뭔가 중얼대는

소리를 들려 들어보니,

식사 전 기도래요.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는데 구구절절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고기반찬을

먹기에 감사한가?’

하며 구멍으로 봤더니,

밥상에는 그 누런

바가지에다가 물 잔뜩 떠놓고

밥도 없고 반찬도 없고 국도 없고.

바가지에 그냥 맑은 물,

그 물 한 그릇 놓고

감사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시원한 물도 못 먹는

사람이 많은데 오늘 주님께서

시원한 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식으로 하는 감사가 아니라

억지로 하는 감사가 아니라

그렇게 물 한 그릇 떠놓고

감사하더래요.

이 미국신부님이

그걸 밖에서 들여다보고

큰 감동을 받았대요.

‘맞다 진정한 감사는

바로 저런 감사구나!’

거기서 며칠 머무르다가

 부대로 합류한 신부님은

미국에 돌아가서

 이 일을 이야기 했대요

그리고 그 집에다

작은 경당을 세우고 싶다고

후원을 부탁하니 순식간에

수만 달러가 모아졌죠.

그래서 그 돈으로

그 집터에다가 공소를 세워서

그 공소 이름이 지금까지도

감사공소입니다.

어느 성당이든지

그 성당에서 제일 많이

들리는 말이 ‘감사합니다.’가

되면 감사 성당이 되는 것이고

여러분 집도 식구들 입에서

 ‘감사합니다.’가 많이 나오면

그 집도 감사 가정이

되는 것이죠.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들의

입에서 얼마나 감사하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불평불만이 있는 곳에는

마귀가 들끓지만.

감사하는 곳에서

마귀가 물러나요

일 년을 되돌아보면 정말

감사할 것 투성이 입니다.

물론 집안에 우환도

 있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몸이 아프셨던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 우리가

두 다리로 이렇게 이 성당

찾아와서 미사드릴 수 있는 것,

내 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할 것인가?

지난 1년 동안 어려운

고비마다 주님께서 나 업어서

그 비탈진 산 오르시고

깎아진 산 고갯길을 친히

 업어서 이 자리까지 오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어두웠던 순간에는 정말

이 세상 살 자신이 없고

죽고 싶은 맘도 몇 번 들었지만

그래도 그 고비 넘겨주신 것

얼마나 감사해야 되겠는가?

주변에 보면 얼굴이

밝은 사람들이 있어요.

‘저 사람은 팔자가 좋으니까

걱정거리가 없으니까 저리 웃고

밝게 사는구나’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이 사는 집안의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죠.

나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형편인데도 정말 감사할 줄

알고 기쁘게 살고

나보다 더 고통이 많은데도

감사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감사를 못하는 이유는

첫째로는 욕심이 앞을

가릴 때 감사를 못합니다.

둘째로 감사는

찾아 헤메 돌아다니는

걸로 착각할 때

감사를 못합니다.

감사는 이미 우리 집에

와있습니다

감사는 찾아

 헤메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발견하고

인정하는 겁니다.

은총이 있어야만

감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눈을

크게 뜨면 머리끝에서

발가락까지 다 감사할 것

뿐 입니다.

제단 앞에 풍성하지는 않지만

호박, 팥 등 곡식이 놓여있지요?

우리 교우들 가운데

 농사짓는 분이 계신지 모르지만

 하느님께 감사드려야죠.

‘올해 내가 농사 잘 지었어.’

 하는 말 만큼 교만한 말이 없습니다.

논 갈고 밭 갈고 씨 뿌렸을 뿐이지,

싹이 나와서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자기가 농사 진 것은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농부인

카인과 목자인 아벨 형제

이야기 나옵니다.

아벨은 양중에서 제일

튼실한 놈을 하느님께 바쳤는데,

카인은 제일 좋은 것은 빼놓고

그냥 위에다가 낱알 튼실한 것

몇 개를 두고 밑에는

 쭉정이만 뒀어요.

그것을 하느님이 모르십니까?

하느님이 아벨의 제물에

축복을 주니 동생 끌고 가서

돌로 때려 죽였잖아요.

일 년 내내 질투와 분노가

마음에서 일어날 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

영적 살인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내립니다.

올 한 해 동안 본당 공동체의

영적인 성장에 대해서도

감사해야죠?

자, 우리 형제자매님들,

우리 서운동 성당에 한 해 동안

어떤 축복이 내렸습니까?

전 세계 다니시는

파티마 성모님 다녀가셔서

나름대로 지극 정성껏

1박2일 잘 모시고 보내드렸어요.

그분이 다녀가셨으니

얼마나 많은 은혜가

우리 성당에 내렸겠습니까?

또 세상 떠나시는 분들

병자성사 받으시고,

이것도 다 큰 영적 은혜지요.

뒤돌아보면 많은

은혜가 있습니다.

저 개인으로도 배티를

 떠날 때는 서운하기도 했지만,

우리 청주에서 제일 오래되고

청주 교구에서 제일 열심하고

착한 신자들이 있는

서운동 성당 오게 돼서

얼마나 감사한 줄 모릅니다.

여러 신심행사를 통해

하느님께 찬미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 본당에

내려주신 것도 감사하고,

또 많은 신자들이 우리

서운동 신자들이

서운동 성당 와서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신 것도 감사하죠.

되돌아보면 우리가 계획도

안한 것을 하느님이

계획하시어 생각지도 못한

축복을 주시는 것이 참 많아요.

그래서 추수 감사 미사 할 때

무얼 감사해야 하느냐?

이런 영적인 추수들

감사해야하죠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

 첫째가 종교인은 감사할 일이

생길 때만 감사하고

신앙인은 감사할

 건덕지가 없어도

아침에도 감사,

 한낮에도 감사,

밤중에도 감사,

잠잘 때도 감사,

어느 놈이 내 뒷통수를

때려도 감사,

어느 놈한테

사기를 당해도 감사.

사기당한 것보다 몇 배로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거예요.

우리 그것 믿고

감사해야죠. 맞죠?

너무 억울하고 정말

속이 상할 때도 많아요.

모함당할 때도 감사하면

하느님께서 알아서 그 사람

심판해주시고 벌 주셔요.

그것 때문에 감사하셔야죠.

불평불만과 어둠이

있는 곳에는

마귀만 들끓습니다.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라 했습니다.

감사는 그리스도 왕처럼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지상의 왕은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지상의 왕이 아니시며

대궐에 아니 사시고

군대가 없었어도 왕이십니다.

첫째로 그분은 화

해의 왕 이십니다.

화해는 일치를 지향합니다.

원죄 이후에 끊어진

하늘과 땅을 이어줬지요.

그래서 왕좌가 만들어 집니다.

지금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가족들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기 싫은 식구들만

있다 보니 어느 집이든

반 이상은 냉담자입니다.

사이비 집단에 빠져있는

신자도 있습니다.

교회가 분열되고 있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모두가

자기 십자가 버리려하기

때문입니다.

일치된 교회는

십자가를 버리지 않는

교회입니다.

교회 봉사단체가

분열되고 없어집니다.

역시 자기 십자가

버리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왕의 삶을

산다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끌어안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 왕은

용서하는 왕 이셨습니다.

의로운 화는 내셨지만

용서를 청하는 자에게는

 어느 죄든지 무한히 용서하는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그 인간이 예뻐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기위해서 용서하십시오.

그 사람 살리려면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고

선으로 대하고 빛으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왕은

봉사하는 왕이셨습니다.

철저하게 부수어 나누는

삶을 사는 왕이셨습니다.

빵이 되어 음식물로까지

우리 몸 안에 들어오시는

봉사의 왕 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윗자리에 앉고

 대접받기 좋아하고

아주기를 즐깁니다.

교회의 모든 직책도

마땅히 내가 그 자리에

있을만하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라도

 앉혀놓지 않으면

엉망진창으로 살 것을

주님께서 아시기에 맡겨두신

봉사직, 하인직이라는 것을

교회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꾀부리지 마십시오.

죽을힘을 다하여 봉사할

순간이 오면 물러나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게 지우지 말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한문 중에 왕자가 들어가는

한자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거룩할 성(聖)자를

우리 신자들은 많이

묵상하셔야 할 것입니다.

거룩할 성(聖)자는 귀 이(耳),

 입 구(口), 왕 왕(王)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입으로

농사지은 것,

 귀로 농사지은 것,

내 십자가로 농사지은 것이

 무엇인가 묵상하는 날,

그리고 그것들을

감사하는 날입니다.

오늘 이 미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합시다. 아멘.

2017년 그리스도 왕 대축일

 (11/26)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photo by - 소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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