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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2.2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22 조회수2,68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12월 22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 1사무 1,24-28

그 무렵 사무엘이

24 젖을 떼자 한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삼 년 된 황소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파와 포도주를

채운 가죽 부대 하나를 싣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25 사람들은 황소를 잡은 뒤

아이를 엘리에게 데리고 갔다.
26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27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28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복음 루카 1,46-56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저는 이제 사이판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늘 오후

비행기로 돌아갑니다.

한국에서는 눈이 참 많이 오고,

날씨도 많이 춥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너무 날씨가 좋아서

(생각보다 그렇게 덥지도 않더군요)

 행복한(죄송합니다)

시간을 보냈답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이 기간 동안 제가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갖은 편의를

제공해주신 사이판 한인공동체의

주임신부님과 신자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러면 사이판에서의 마지막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사이판에 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있었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식사를 하고서 출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공항 내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주문을 하는데

주문을 받는 점원의 표정이

그렇게 밝지 않은 것입니다.

 ‘안 좋은 일이 있나?

그래도 손님들이 기분 좋지

않다는 감정을 표시하면 어떻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손님들을 만나면서 힘들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긴 요즘에 가장 힘든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일을

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라고 하지요.

그래서 주문을 하고

계산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말로 일을 잘 하시네요.

이렇게 힘든 곳에서 일하면서도

밝게 웃어줘서 고마워요.”
바로 그 순간, 얼굴 표정이

바뀌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의 말 한 마디가 그래도

조금의 힘을 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제 자신이 더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책을 보니 사람은

사람에게 ‘파급효과’라는 것을

남길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어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단 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그 여운이 남고 남아서

후대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분명해집니다.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삶,

그래서 나의 말과 행동에

특히 주의를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성모님께서는

 ‘성모찬가’를 부르시지요.

예수님 잉태 후 큰 고민 속에서

사실 수밖에 없었던

성모님이셨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갖고,

이로 인해 겪게 된 파혼의 위기

등등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성모님께서는 큰 기쁨으로

성모찬가를 부르십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느님의 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안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을 체험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의 눈으로는

어렵고 힘든 순간이지만,

가장 큰 기쁨 속에서 찬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모님의 이 모습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이유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큰 기쁨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내가 받을 것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또 행동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내 이웃에게

따뜻한 말과 사랑 가득한 행동을

한다면 어떨까요?

 우리 역시 그 안에서

큰 기쁨을 얻어 찬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 주변의

모든 것도 더 나아진다.

(파울로 코엘료)

사이판의 성모동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어떤 사람이 시속 100Km

구간의 고속도로에서 시속

160Km로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미끄러져서

큰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일까요?

무모하게 운전한 자동차

운전자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160Km라는 속도로

달릴 수 있도록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잘못일까요?
당연히 160Km로 과속

운전을 한 운전자의 잘못이라고

이구동성을 말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동차를 만든

사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종종 잇는 것 같습니다.

특히 주님께 대해서

 불평불만을 던지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께서 어떻게

내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면서

얼마나 많은 불평불만을

던지고 있을까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자신의 삶을

책임감 있게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이판 정상에서 바라본

사이판 해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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