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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2.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24 조회수2,842 추천수7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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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4일

대림 제4주일

제1독서 2사무

7,1-5.8ㄷ-12.14ㄱ.16

다윗 1 임금이

자기 궁에 자리 잡고,

주님께서 그를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셨을 때이다.

2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
3 나탄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4 그런데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8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제2독서 로마 16,25-27

형제 여러분,

25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26 이제는 모습을 드러낸

이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도록,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7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루카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우스는

하느님 심판에 대해 물었습니다.
“주님, 어떤 사람들은 젊어서

죽고 어떤 사람들은 고령으로

죽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사람들은 가난하고

다른 사람들은 부유합니까?

어째서 악인들이 부유하고

의인들은 가난합니까?”
그에게 다름과 같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안토니우스,

너 자신에게 집중하라.

이 심판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니

그것을 안다고

너에게 좋을 것은 없다.”
우리는 내 자신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다른 외적인 것에

집중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불평불만을 품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자신이 행해야 할 것들,

특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삶을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역이 아닌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 분을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어머니이며

우리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받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할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대단하고 하느님을

찬양할 만한 일이지만,

당사자인 성모님의

입장에서는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주님 잉태 소식을

듣는다면 어떠시겠습니까?

 제가 만약 이 말을 듣게 되면

이렇게 말씀을

드릴 것 같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님,

물론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하지만,

저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독신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신부(神父)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를 가져보십시오.

해외토픽 감입니다.

이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기를 가져서는 안 될 이유들을

세상의 논리를

내세워서 펼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면 이러한 일이

 

 

 

 

과연 불가능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하시고자 하시면 분명히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의 입장에서

그리고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단정을

내리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천사의 말에 전혀

의심을 품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이 믿음은 오늘 제1독서에서

나탄 예언자를 시켜 다윗

임금에게 하신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겠다.”

(2사무 7,12)

실현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믿음이 바로 하느님께서

이 땅에서 강생하시는

큰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게 하였지요.

(로마 16,26 참조).
하느님의 영역을 전혀

침범하지 않는 그 믿음이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이렇게 살아야

함을 분명히 전해줍니다.

즉,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대신 내 자신의 영역에

최선을 다하는 삶,

그리고 이 삶은 주님의 뜻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네 개의 대림초가 모두 환하게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드디어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강생하신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주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매년 똑같이 반복적으로 맞이하는

성탄절이라면서 하루 즐기고

쉬는 날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영역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 믿음을 가지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들에 최선을

 다할 때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을

가장 기쁘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에 대해

성녀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느님 사랑,

돌아가신 하느님이 아닌

살아 계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봄을 기다리는

나무는 시들지 않는다.

(황태영)

사이판 주교좌성당의 성탄구유

"행복이란?"

제가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지금의 고통과 시련이

장차 있을 행복을

보장해준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금의 어려움과

힘듦을 피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어려움과 힘듦을

피하지 않는 것은

좋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장차 있을

행복만을 바라보면서

‘지금을 버티자.’라고만

생각한다면 지금의 삶이

너무나도 어둡게만 보입니다.

 나중에만 만족스러운 삶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행복한 사람은 지금을

 만족하며 기쁨 속에 사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러한 사람만이 지금도

행복하고 먼 훗날에도 똑같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버티자’는 생각에서

‘즐기자’라는 생각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등산을 할 때,

산꼭대기를 바라보고 거기에

이르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산에 오르는 것이

별로 재미없습니다.

산 정상에서 “아 좋다.”

한 마디 하고

그냥 내려올 뿐이지요.

그러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오르는 그 길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을 느끼고,

산 속에서 울려 퍼지는 각종

 소리에 집중하면 어렵고

들어도 그 길이 즐겁습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다음 기회에

또 등산을 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지금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즐기는 마음으로

각종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면 분명히 커다란

행복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먼 훗날에도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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