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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25.강론."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25 조회수1,639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 2,1-14(성탄대축일 밤 미사)

 

 축하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우리 주님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것도 인간 중에 가장 무력한 아기가 되어 오셨습니다. 아기구원자의의 표징입니다.

 <복음>에서 천사는 말해줍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우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2)

 

 구세주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자신을 작게 하십니다. 그분은 드러나게 권위를 띠 띠고 오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권능으로 사로잡지 않습니다. 당신의 위대함으로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도 않습니다.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어른이 아니라, 막강하고 강력한 왕이 아니라, 나약하고 힘없는 아기로 오십니다. 그분은 무방비 상태이며, 오히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기로 오십니다. 이것이 그분이 다스리는 방식입니다.

 단지 우리 사랑을 간청하십니다. 그래서 아기가 되십니다. 작게 되시어, 우리가 당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랑하게 하십니다. 사랑 외에 어떤 것도 바라지 않으신 까닭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기를 통해 인간이 누구인지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게 됩니다. 아기 예수님과의 만남이 참된 인간의 길을 열어주고, 동시에 우리가 하느님 되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기는 무기력하지만, 우리에게 기력이 솟아나게 합니다. 무능력하지만, 우리에게 사랑을 체험시켜주는 능력자입니다.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오히려 우리를 악으로부터 보호해줍니다. 그것은 너무도 무력하여 도무지 자기 자신에게는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약함, 이 무력함 안에 구원의 신비가 있습니다.

 아기알몸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다시 가실 때의 십자가에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무력함의 표상입니다.

 무력함, 그것은 사랑의 신비가 형상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이요, 동시에 당신의 사랑을 신비롭게 건네주시는 방식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드러나는 모습이요, 동시에 사랑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여기에,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가 있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알몸의 아기로 탄생하는 것일까?

, 인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나약한 존재로 탄생하신 것일까?

 

 <성경>에서 알몸무 보호, 무능력을 뜻합니다. 곧 무능력하여 보호를 받지 않으면 곧 죽어 사라질 존재이기에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타인을 필요로 하는 존재,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존재!” 바로 이것이 하느님께서 아기의 약한 존재로 탄생하셔야 했어야 할 이유가 아닐까? 자신의 약함을 받아들여야 사는 존재!” 이것이 바로 인간이 무력하고 약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약하기에 타인과 함께 살아야 하고 타인의 약함을 받아들여 사는 존재, 바로 여기에 우리가 살아야 할 참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이처럼, 아기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폭력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여 살아야 할 존재임을 가르쳐줍니다. 자신과 타인의 약함을 받아들여야만 살 수 있는 존재요”,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로 사는 것이 인간의 길임을 가르쳐줍니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가난이 있습니다.

 <예언서>에서 가난한 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한 마디로, 하느님 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가난한 이란 돈이 없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킬 방도라고는 도무지 없어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알몸인지라 자신을 지킬 방도가 도무지 없어, 오로지 주님 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진정, 주님께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는 자신이 주인 되지 않고, 언제나 함께 계신 임마누엘이신 주님을 주님 되게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성탄은 바로 이 무력한 알몸의 아기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탄은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하느님 나라와 미래를 상기시켜줍니다. 그러기에 성탄은 바로 지금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탄생은 곧 우리의 탄생이 됩니다.

 이를 두고 레오 교종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머리이신 그분의 탄생일은 그분의 몸인 우리의 탄생일입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심은 우리가 하느님으로 태어나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예수님의 탄일임과 동시에, 바로 우리 모두의 탄일인 것입니다.

 

 이 밤, 진정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탄생하시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탄생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되시고, 우리는 하느님이 되었습니다. 이토록,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탄생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탄생했습니다. 진정, 우리는 모두 오늘 이 밤에, 임마누엘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주님, 예수님의 탄일과 함께 탄일을 맞은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생일의 축복과 기쁨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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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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