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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28 목/ 폭력성을 버리고 서로를 살리는 사랑으로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27 조회수2,014 추천수4 반대(0) 신고




무죄한 아기 순교자들 축일, 1요한 1,5-2,2; 마태 2,13-18(17.12.28)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1요한 1,7)





The massacre of the infants


 



폭력성을 버리고 서로를 살리는 사랑으로

 

오늘은 헤로데의 손에 죄 없이 죽은 아기 순교자들의 축일입니다. 헤로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유다인들의 최고회의를 없애려고 300여명의 원로들과 법령위원들을 살해합니다. 그 뒤 자신의 아내 마리아와 장모 알렉산드라, 그리고 두 아들까지도 죽입니다. 자신이 죽을 당시에는 예루살렘 귀족들까지도 살해해버립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헤로데에게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 하고 묻습니다. 이에 왕권에 위협을 느낀 잔인한 폭군 헤로데는 화근을 아예 없애려고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립니다.”(2,16)

헤로데는 그렇게 권력을 사유화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오신 하느님께 맞서는 어리석음에 빠졌습니다. 극도의 교만과 사악함으로 하느님의 힘에 맞선 것입니다. 탐욕과 권력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힌 그는 결국 죄 없는 아기들을 죽이는 폭력성을 드러낸 것이지요. 주님의 성탄에 이어지는 피를 부르는 헤로데의 폭력성은 인간의 죄악성과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때문에 죄없는 아기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순교는 단순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들의 죽음은 비참한 죽음이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죄 없는 아기들은 피로써 신앙을 고백한 셈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존재로 창조된 인간은 자신이 주인이라는 착각에 빠지면서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고 힘으로 남을 지배하려 들곤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생명을 사랑으로 살려나가기보다는 폭력성을 드러내며 경쟁하고 지배하는 헤로데의 가면을 쓰며 볼썽사나운 연극을 하는 것이지요.

헤로데는 인간의 교만과 폭력성의 결정적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 나 자신과 우리 사회 안에 이런 헤로데의 죄악성과 폭력성, 하느님을 무시하는 교만이 얼마나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까? 아기 예수님 때문에 죄 없이 순교한 아기들처럼 오늘 우리 사회의 수많은 민초들도 권력자들에 의해 핍박당하며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져갑니다.

얼마나 많은 권력가들과 자본가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힘과 재물을 자기 것인 양 내세우며 다른 이들을 멸시하고 차별하고 핍박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도 돈과 권력, 탐욕과 명예욕에 의한 폭력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수난 당하고 죽어 가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은 곧 예수님의 고통이요 하느님의 죽음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고통과 죽음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죽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죽은 아기들의 순교를 기억하고, 내 안의 폭력성과 반생태적인 언행을 삼가며, 다른 이들의 죽음까지도 사랑으로 끌어안음으로써, ‘빛속에서 친교를 나누며’(1요한 1,7) 살아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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