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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2.3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30 조회수1,77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12월 30일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제1독서 1요한 2,12-17

12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13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4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5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복음 루카 2,36-40

그때에

36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2015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수저계급론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직업,

경제력 등으로 자녀의 삶이

결정된다는 이론입니다.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한 현재의

상황에서 더욱 더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잘사는 집은 유학도 보내주고,

결혼할 때 집도 사주지만

저는 그렇지 못해요.

흙수저거든요.”
그리고 어떤 부모로부터는

“내 자녀에게 많은 것을

 물려줄 수 없어서

늘 미안한 마음이에요.”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무조건 부모 탓일까요?

많은 것을 물려주지 못하면

부모는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사실 대부분이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받지 못합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은 전체와의 비교가

아니라 아주 적은 부분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다수보다 처지가 나은

소수하고만 스스로를

비교하며 불행해한다.”
부잣집 친구들과 비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래 대부분의 친구들과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그리 나쁜 상황이

아님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소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존경심을 갖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좀 더 쉬운 길’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쉽고 빠른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향해 자신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좀 더 쉬운 길’만을

찾으면서 이 사회에 대해서,

특히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께

대해 불평불만을 가져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보다는 힘든 길이지만

‘옳은 길’을 가는 것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자신감을 갖고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이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한나라는

예언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든네 살의 나이, 혼인하고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는

쭉 과부로 지냈다고 합니다.

 당시는 남성중심의 사회로

여자 혼자서 살기란 정말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보통 15~16세에 혼인을

하던 당시를 떠올려본다면

거의 60년을 과부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나 예언자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을까요?

그런데도 그녀는 좀 더

쉬운 길을 찾으면서

불평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어렵고

힘들지만 ‘옳은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 ‘옳은 길’에 대한 선택이

결국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직접 보게 되는 영광을

가져왔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쉽고 편한 길만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보다는 ‘옳은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이를 따르는데

주저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직접 주시는

큰 행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인생의 실패자들은

포기할 때 자신이 성공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모른다.

(토마스 A. 에디슨)

신약의 예언자 한나.

"사랑해, 그뿐이야"

(리처드 칼슨, 크리스틴 칼슨,

 ‘잘하고 싶다. 사랑’ 중에서)

‘사랑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런데’가

붙으면 진심과 존중이

담긴 말이 잔소리로 전락한다.
이 사실을 알려 준 사람은

아내 크리스였다.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녀가 물었다.
“방금 나를 향한 사랑에

두 번이나 단서를 붙인 거 알아?”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는 것은 좋지만 거기에

단서를 달면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때 내가 한 말은 이랬다.

“난 널 사랑해. ‘그런데’

네가 날 안 기다리게 하면 좋겠어.

” “난 널 사랑해. ‘그런데’

네가 친구들과 뭘 할 때

당연히 나도 같이하고 싶어

할 거라고 짐작하는 건 불편해.”
그녀는 고칠 점이 있다면

단서를 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다. “사랑해.”

라는 말을 그녀의 문제와

연관 짓지 말라는 의미였다.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내가 ‘사랑해’ 뒤에 ‘그런데’를

붙이는 의도는 순전히 내 불만을

그럴듯하게 들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난 착하고 참을성 있고

 이해심 많은 남자고

널 진심으로 사랑해.

자, 그 점을 밝혔으니 이제

네가 어떻게 바뀌면 훨씬

사랑스럽게 보일지

이야기해 줄게.”

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상대방이 사랑스러우면

사랑스럽다고 말하자.

그리고 거슬리는 게 있으면

솔직히 털어놓자.

단,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지는 말자.

둘을 분리할 때 칭찬도

염려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라서 소개합니다.

사랑은 조건이 붙을 때,

사랑의 아름다움이 사라집니다.

갑곶성지 직원들과 송년모임으로

문화행사 다녀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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