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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01 조회수2,110 추천수6 반대(0)

무술년 개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개띠는 58년생입니다. 저의 형님이 58년 개띠입니다. 개는 인류와 함께 지낸 친숙한 가축입니다. 예전에 주일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목자이고, 본당 신자들은 양이라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럼 보좌 신부님은 양들 옆에 있는 개인가요?” 당시에 보좌신부였던 저는 본의 아이게 개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반려견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개는 집을 지키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와 같은 동물이 되었습니다. 충무로에는 애견센터가 많습니다. 며칠 전 그 길을 걸으면서 창가에 있는 강아지들을 보았습니다. 어찌나 귀엽던지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새해에는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면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이 되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동양화를 감상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첫째 원근이 잘 나타났는가? 먼 곳과 가까운 곳이 잘 표현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늘 높이 있는 달과, 눈앞에 있는 나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원근이 잘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둘째 구도가 잘 잡혀있는가? 산과 강, 나무와 배, 꽃과 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지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셋째 선이 뚜렷하게 보이는가? 강과 산의 경계, 하늘과 산의 경계, 땅과 물의 경계가 뚜렷해야 한다고 합니다.

넷째 명암이 잘 드러나는가?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잘 표현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꽃은 더 아름답게 드러날 것입니다. 달밤은 더욱 운치 있게 표현 될 것입니다.

다섯 번째 여백이 있는가? 한 폭의 그림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마음에는 여유가 있어야 하듯이, 그림에도 여백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다섯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잘된 그림이지만 작품은 아니라고 합니다.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 , 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는 선비 아인데 그림에 품격이 있어야 하고, 묘는 그림에 평범함을 넘어서는 묘함이 있어야 하고, 신은 그림에 신비함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3가지가 있으면 비로소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구원의 역사에 대해서 잠시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째, 구원은 하느님 약속의 실현입니다. 창세기 3, 미가서 5, 이사야서 7장에 예언된 하느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사건이 구원의 역사입니다.

둘째, 연약한 처녀의 응답을 전제로 합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느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시지만 우리의 응답을 기다려 주십니다.

셋째, 역사의 기준이 됩니다. 기원전, 기원후라는 표현은 주님의 탄생전과 주님이 탄생한 해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구원의 역사는 마리아의 노래에서 볼 수 있듯이 명암이 드러납니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시며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시고, 배고픈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초라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평범한 시골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많은 여백을 남긴 체 탄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2018년이라는 도화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 희망, 사랑, 나눔, 희생, 친절, 온유의 물감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때로 고통, 절망, 아픔이라는 얼룩이 질지라도 그 그림은 하느님께서 어여삐 여기시는 그림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욕망, 분노, 미움, 시기, 질투, 편견이라는 물감으로 볼썽사나운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재물, 권력, 명예가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그 그림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림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아기 예수님을 처음 받아 준 손은 목수 요셉의 거친 손이었고, 그분을 처음 맞아들인 장소는 누추한 구유였습니다. 그분께 찬미와 찬양을 드린 첫 번째 사람도 밤을 지새우던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 강생의 짧은 이야기는 약하고 보잘것없는 곳, 비천한 사람들 안에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핵심 진리가 있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내 안에 깊이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이 나를 구원할 내 인생의 구유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세계 평화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총과 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거창한 행사나 사업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처럼 겸손과 순명으로 삶의 모든 파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귀양살이 끝날 때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하소서.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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