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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땅나 61 부 활 1
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02 조회수1,293 추천수0 반대(0) 신고

 

[하늘땅나61]    부     활 1 

 

 

부활 :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주간 첫 날(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날) 새벽 동이 틀 무렵(마태 28, 1)에 스스로 무덤을 막았던 돌을 치우고 나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래 전에 당신께서 창조하셨던 세상을 다시 새롭게 재창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새로운 빛을 몰고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님의 부활로 인해 새로운 세상, 밝고 희망 찬 구원의 새 세상이 왔습니다. 그분은 “교만과 불순명” 때문에 이 세상에 들어온 죽음을 “겸손과 순명”으로 기워 갚아 이 세상에 새 생명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부활하시므로 “갈라졌던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늘나라와 죄와 죽음이 있는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땅 가장 밑바닥인 무덤으로부터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계시는 가장 높은 하늘 꼭대기에 이르는 모든 곳(“하느님의 오른편” 사도행전 7, 56 참조)에 걸쳐 계시며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를 당신의 아버지께로 이끌어 가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지니고 계신 그분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유한한 육신을 지니고 있는 우리가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을 수 있으며 어찌 영원한 생명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태초에 원조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갈라진 하늘과 땅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님의 몸으로 인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비로소 태초로부터 세상 끝날 까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아름다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보존한 모든 사람들이 기뻐 뛰며 아버지 집으로 달려갈 수 있게 되었으며, 더럽혀진 모든 사람들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십자가에서 흘린 그분의 피로 인해 깨끗하여져서 그분의 몸을 타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 19~23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태초에 하느님께서 사람을 진흙으로 빚으신 후 ‘입김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하신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새로운 사람으로 완전히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분의 숨,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 받은 그들은 이제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하느님 특유의 권한)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그분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신 당신의 생명을 받아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원하시기에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르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므로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욕심과 애착심에서 벗어나 겸손되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한다는 것’은 ‘영원히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어두움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공포, 근심, 걱정, 모든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 밝은 빛 속에서 한없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쁨 중에 누리는 평화이기에 그것은 아무도 빼앗을 수도 건드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싸움이 없고, 시끄럽지 않고, 주어진 상태 안에서 가만히 있는 상태를 평화스러운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평화를 주러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 고 하셨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끼리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으며, 다른 사람도 아닌 ‘집안 식구가 바로 자신의 원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그분께서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안정을 취하며 머물러야 할 곳은 죽음의 관문을 넘어서 떠내려 온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흙을 취하여 나를 만드신 깨끗한 땅!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려고 마련하신 ‘태초의 세상 낙원’이기 때문에 나는 그 땅에서만 안정을 취할 수 있으며 참다운 평화를 맛볼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떠나 있던 그 땅에 도달하려면 지금까지 ‘나의 집’이라고 여기고 있던 곳을 떠나야만 합니다. 떠나려면 먼저 나와 가장 밀착되어 있는 ‘집안 식구’로부터 떠나야만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형제들, 내가 애착을 느끼고 있는 모든 일과 사물과 사람들에게서 떠나 이렇듯 십자가의 길 그 끝에서 부활하신 당신처럼 우리도 부활한 후에 당신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해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오 10, 34~39

 

부활한 나 : 예수 그리스도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 모든 것 다 버리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로부터 벗어나 참 평화를 누리게 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잘못이나 부족, 죄악, 결점, 약점을 용서해 주시고 받아주신 예수 그리스도님처럼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 죄악, 결점, 약점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의 잘못까지도 받아주고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통해 자신의 더러운 껍질을 벗어버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의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게 되면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기에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 자신과 똑같이 창조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받아 줄 수 있게 되어 그들 모두의 잘못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한없이 크시며 빛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며 존귀하게 여기시기에 당신의 목숨까지 바쳐서 더없이 귀한 당신의 흘리신 피로 살려내어 “존귀한 존재”가 되게 해주셨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모든 나”도 나와 똑같이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내신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더러움을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시고 다 용서(‘간음한 여자’ 요한 8, 11 참조)하여 주시는데 어떻게 감히 내가 ‘남의 더러움’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로부터 나는 다만 그분이 나를 사랑하셨듯이 ‘또 다른 나를 사랑하고자’ 할뿐이며, 그분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듯이 ‘또 다른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할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을 때에’ 그들은 눈이 열려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루가 23, 30~31 참조) 그분과 함께 부활한 나도 이제부터는 그분처럼 ‘자신의 살과 피를 이웃에게 먹이로 내어주는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원한 죽음이 있는 땅에 속하였던 죄 많던 나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와 이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라고 말씀하신 성모 마리아님처럼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만과 불순명으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전해준 아담과 같이 죽을 몸이었던 내가 겸손되이 주어지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순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님처럼 일상 생활 안에서의 아주 작은 일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주어지는 아주 작은 일들을 기쁘게 행하며 하느님께로 달려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하시든 상관이 없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라고 하시든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 아이와 같이 기쁘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 다 그분의 영광만을 위하여 그분의 뜻대로만 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2, 20

 

밀알 : 밀알에게 있어 부활은 싹이 튼 상태를 말합니다. 오랫동안 들어 있던 캄캄한 땅 속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이제 밀알은 전과 완전히 다른 새 세상을 맞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햇빛도 바람도 물도 땅도 거름도 싫기만 하였지만 모든 것이 다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귀한 것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햇빛, 물, 흙, 거름 등 모두를 자신 안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땅에서 싹이 튼 밀 이삭은 이제 농부의 따뜻한 손길과 보호 속에서 튼튼하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주어도 주어도 없어지지 않는 “생명의 빵”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그날을 꿈꾸면서....

 

물고기 : 자신이 태어난 곳을 향해 머나먼 길을 거슬러 온 물고기가 드디어 태어나면서 떠났던 깨끗한 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생겼던 곳! 태어난 고향! 무한한 생명을 자신 안에 잉태할 곳! 이제 물고기는 험난하고도 긴 여행을 마치고 편안하게 맑고 깨끗한 고향의 물을 마시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멀고도 먼 바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던 죽음의 위험! 또 위험! 

그 많은 난관을 헤치고 도달한 꿈에도 그리던 아름답고 깨끗한 안식처!

 

이제는 마음껏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더욱더 깨끗해져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수천 만리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오지 않았던가! 이제부터는 지난 모든 일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온 몸이 다 녹아 물이 되는 그 날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합니다. 수천 마리의 새 생명이 자신의 몸속에서 다 자라 살아 움직이게 되는 그 날까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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