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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4 목/ 다가감과 관상으로 싹틔우는 영원의 씨앗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03 조회수2,996 추천수3 반대(0) 신고




주님 공현 전 목, 요한 1,35-42(18.1.4)

“와서 보아라.”(요한 1,39)





The First disciples


 



다가감과 관상으로 싹틔우는 영원의 씨앗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인 안드레아와 또 다른 제자가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6) 하는 스승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들은 스승 요한의 말을 듣고 관심을 보이며 조심스레 따라간 것입니다. 그들은 수동적 자세를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먼저 다가오시어 “무얼 찾느냐?”(1,38) 하고 물으십니다.

구세주 예수께서는 능동적으로 찾아오시어 말을 건네며 관계를 맺어주십니다. 이런 움직임은 단순한 친분관계를 맺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관계는 성사적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이 관계맺음으로 유한한 인간이 영원하신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이기심과 탐욕을 지닌 인간이 사랑을 만난 때문입니다.

“무얼 찾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은 겉치레 관심을 보이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갈망이 무엇인지를 물으신 것이지요. 그들이 품고 있는 씨앗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며 진정 구세주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를 확인하신 것입니다.

두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십니다(1,38-39).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습니다. 주님의 영원한 가치와 생명을 만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오라’ 하신 것은 단순한 방문 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의와 자비를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세상이 아닌 하느님께 두라는 결단의 촉구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고통과 시련의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곳, 공권력에 의해 짓밟혀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이들의 가슴, 인간의 존엄이 무시되는 곳, 국민의 인간다운 삶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당리당략만 앞세우는 한심한 정치 현장에 그분께서 계십니다.

국민이 주인임을 망각한 채 저질러진 뿌리 깊은 적폐의 온상, 국가나 민족 간의 분쟁의 현장, 폭력과 불의가 저질러지는 곳, 강대국들의 패권주의와 자본가들의 끝없는 탐욕이 저질러지는 곳 바로 이런 곳들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곳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라고 하시며 ‘보라’ 하십니다. 그것은 단지 소박한 거처를 보라는 것일까요? ‘보라’는 것은 예수님의 ‘삶의 자리’를 보라는 것이고 당신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당신 자신을 보라는 것이지요. 이 초대는 관상으로의 초대인 셈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씨앗을 품은 사람들입니다(1요한 3,9). 이 씨앗을 싹틔우도록 영원한 생명의 샘물이신 주님께 다가가 그분과 함께하며 그분을 관상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수난 받으시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을 찾아가 사랑을 나누고 불의와 악에 맞섬으로써 주님의 씨앗을 잘 키워가야겠습니다. 정의를 실천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님을 기억해야겠지요(1요한 3,10)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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