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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왜 이리 심각한가?
작성자김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06 조회수1,62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주님 공현 대축일

<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복음: 마태오 2,1-12






동방 박사들의 방문


안젤리코(Fra Angelico) 작, (1432-1434), 코르토나 디오체사노 박물관

 

참으로 심각한 고민을 지니고 상담하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 사람이 잘못했느니, 저 사람이 잘못했느니 하며 하소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고 맞장구 쳐 주기를 원합니다. 처음엔 그렇게 위로해 주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만 옳다는 교만만 더 크게 만들어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해결책은 아마도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게 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시각은 이 세상 삶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고 이 세상 삶의 의미는 이 세상을 만드신 분만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난 사람들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다릅니다.

 

영화 쥬만지(2018)는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그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가정으로 삼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사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도 이 세상에 던져졌고 이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입니다. 아이들은 게임 안에 빨려 들어가 각자에게 주어진 생소한 어른의 모습에 적응해야합니다.

그들이 게임 안에서 만나게 되는 한 명의 또 다른 빨려 들어온 사람이 있는데, 그는 게임 안에서 빠져나오려다 이미 생명 둘을 잃어 마지막 하나까지 잃을까봐 20년이란 세월을 게임 안에서 안주하며 사는 인물입니다. 게임은 어떤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각자에게 단 세 개의 생명만이 주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모험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그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의 부모님은 20년이란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생명까지 잃을까봐 어떤 노력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주인공은 헤로데입니다. 그는 세상에서는 왕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얻은 것들을 잃을까봐 새로 태어난 생명의 왕을 죽이려합니다. 이 세상에 집착하는 것은 이 세상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헤로데는 자신의 헛된 삶의 의미를 위협하는 평화의 왕을 제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얻은 것들을 잃을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 부류의 사람을 구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게임 밖으로 나가는 것만을 유일하게 목표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새롭게 빨려 들어간 네 명의 새로운 인물들은 이제 그 게임을 만든 사람을 만나 잃어버린 보석을 찾아 다시 돌려놓기만 하면 미션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모험을 하며 자신들의 생명을 잃어가더라도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게임 안에 갇히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20년 간 게임 안에 갇혀있는 사람에게까지 힘을 주고 함께 승리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렇게 주님을 찾았던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부족한 것이 없는 이들이지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이 세상에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그러던 중 하늘의 새로운 별을 발견합니다. 자신들의 미션을 알려줄 누군가가 태어난 것입니다. 하늘엔 수많은 별이 있지만 그들이 찾던 영원한 생명의 별이 뜨자 그들은 바로 그 별에 반응합니다. 그러나 세상 욕망들로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수많은 욕망 중의 하나이기에 주님께서 오신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오직 동방박사들만 밭에 뭍인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가치를 얻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삶에 지쳐있고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명확히 깨달아 참 삶의 의미가 아니면 어떤 것에도 마음을 주지 않는 상태가 된 상태입니다.

이 귀중한 삶의 의미인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바칠 정도로 원하지 않으면 찾아질 수 없는 곳에 계십니다. 아니 오히려 찾으려고만 하면 찾기 아주 쉬운 곳에 계십니다. 다만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기 때문에 그 별을 바라보기를 원치 않을 뿐이고 스스로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잃게 만들 그 누군가를 찾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별빛이 사라졌을 때 목숨을 걸고 헤로데 왕을 찾아갑니다. 왕에게 새로운 왕의 탄생을 묻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두려움은 없습니다. 더 큰 두려움은 참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설레고 기쁩니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자신들을 이끄는 그 별빛과 이미 예언서에 그 탄생이 예고되어 있음을 알고는 더 기뻐합니다. 이미 그들이 참 삶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이미 세상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보다 더 큰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른들이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이 게임 안에서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고 희생하고 협동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실제로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참 삶의 의미인 그리스도를 발견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하느님 나라에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수준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을 창조하고 우리를 넣어주신 이유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을 만나야 이 세상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세상이 하나의 과정이기에 노력하다 죽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 헤매는 헤로데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에게는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시간, 모든 공간,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주님을 만나게 만드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참 의미로 남게 됩니다. 마치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지나치는 풀과 나무, 새들까지도 자신을 목적지까지 이끌어주는 친구가 되고 의미가 되어 행복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목이 말라 물만 마시며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세상을 즐기지 못합니다. 심각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집착한 이들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잡혀있지만 저 세상으로 향하는 사람은 그것이 자기성숙의 하나의 귀중하고 감사한 기억으로 삼아서 그것이 고통처럼 보일지라도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행복합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한 출구를 찾는 하나의 게임과 같습니다. 내가 나 자신도 원하지 않게 이 세상에 던져져 살고 있다면 누군가가 나를 이 게임 속으로 초대한 것이고 그 게임 안에서 의미를 찾아 더 성장하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 게임 안으로 밀어 넣은 그 누군가는 직접 그 게임 안에서 우리에게 그 게임의 참 의미를 알게 해 줄 무언가를 마련해 놓았을 것인데 그를 찾지 못하면 영원히 게임 안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게임에는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미션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이렇게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게임이라고 알려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란 이 게임을 설계하신 분께서 게임의 의미를 알려주시기 위해 그 게임 안으로 들어오셔서 당신을 만나기를 기다리신다는 의미가 있고 그분을 만나면 진정한 이 세상의 의미를 깨닫게 되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힘 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공적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려 하십니다. 만약 주님을 만났다면 마치 동방 박사들처럼 게임의 한 과정을 통과하는 것처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게임에서의 죽음은 참 죽음이 아니고 오히려 죽지 않기 위해 게임 안에 안주하는 것이 참 죽음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두려움 없이 사는 사람이 이 세상의 삶을 만들어진 그대로의 의미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죠커는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배트맨은 항상 심각합니다. 죠커가 악당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보여 더 매력 있게 보입니다. 그는 항상 말합니다. 왜 이리 심각하냐고. 이 세상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주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교육의 장입니다. 훈련소를 마치 전쟁터처럼 심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도 나에게 실제로 총을 쏘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세 명의 동방 박사들은 그런 마음으로 기쁘게 세상을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그렇게 살도록 주님께서 당신을 만나러 오라고 당신 자신을 드러내는 시기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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