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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9 화/ 모두를 살리는 참 권위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08 조회수1,923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1주 화, 마르 1,21ㄴ-28(17.1.9)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마르 1,22)





The cure of a demoniac


 



모두를 살리는 참 권위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율법학자들과는 다른 그분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몹시 놀랍니다(마르 1,21-22). 이어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라며 사람들이 모두 놀랍니다(1,23-27).

권위란 개인이나 제도나 이념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여 구성원들에게 공인되어 영향을 미치는 힘을 말합니다. 권위의 정당성을 획득한 일종의 권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위는 영향력을 잃고 인정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권위를 행사할 때 '권위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어떤 점에서 새로웠기에 모두가 놀라며 그것을 인정했을까요? 율법학자들은 모세오경과 조상들의 전통을 근거로 율법을 가르치고 삶에 필요한 지침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들은 지식에 머물렀고 삶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셨고, 하느님의 능력으로 말씀을 삶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곧 그분의 권위는 '생생한 삶의 권위'였습니다. 그분은 삶 깊숙히 파고들어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생명의 힘을 지니셨습니다. 그 힘은 하느님 사랑의 힘이었고 창조의 힘이었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모든 이를 죄와 억압에서 해방시키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가난하게 오신 가난한 분으로서 가난한 이의 삶속에 들어가시어 함께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와 함께 온갖 불의와 죄악에 저항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그분의 삶의 권위, 사랑의 권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1,22). 모두가 예수님에게서 하느님ㄹ 보았기에 놀란 것이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분의 사랑에서 출발할 때 권위가 드러납니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실천할 때 권위가 있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의 힘과 생명의 힘을 드러낼 때 권위가 살아납니다. 참 권위는 공동선을 실현하고 다른 이를 섬길 때(마르 10,45) 빛을 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답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그 ‘더러운 영’을 쫓아내심으로써 권위를 드러내셨습니다. 따라서 권위를 지닌 참 제자가 되려면 '더러운 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겠지요. 하느님 아닌 것들에 매이게 하는 모든 것이 바로 ‘더러운 영’입니다. 두려움과 불안, 낮은 자존감과 차별의식, 편견과 탐욕, 미움과 분노, 돈을 비롯한 우상들, 집단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참 권위를 드러낼 때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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