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1월 11일(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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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1-11 | 조회수1,60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1월 11일 [(녹)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말씀의초대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계약 궤를 모시고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지만 크게 패하여 계약 궤를 빼앗긴다.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그가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는 바람에 드러나게 고을에 들어가지 못하신다. ◎제1독서◎ <이스라엘은 크게 패배하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겼다.> 말씀입니다. 4,1ㄴ-11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 벌판의 전선에서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진영에 도착하자,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이 큰 함성을 듣고,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이렇게 싸우자,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화답송◎ 시편 44(43) 10-11.14-15.24-25 (◎ 27ㄴ 참조) 저희를 구원하소서. 치욕스럽게 하셨나이다. 저희 군대와 함께 출정하지 않으셨나이다. 당신이 저희를 적에게 쫓기게 하시어, 저희를 미워하는 자들이 노략질하였나이다. ◎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구원하소서. 이웃에 우셋거리로, 주위에 비웃음과 놀림감으로 삼으셨나이다. 저희를 민족들의 이야깃거리로, 겨레들의 조솟거리로 삼으셨나이다. ◎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구원하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소서, 저희를 영영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당신 얼굴을 감추시나이까? 어찌하여 가련하고 비참한 저희를 잊으시나이까? ◎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구원하소서. ◎복음환호송◎ 마태 4,23 참조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복음◎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복음입니다. 1,40-45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깨끗하게 되어라.”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그분께 모여들었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과 독서에서는 예수님께 치유를 청하는 나병 환자와, 필리스티아인과 싸워 이기려고 하느님 현존의 상징인 주님의 계약 궤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스라엘 원로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청하는 나병 환자의 모습은 치유의 주도권이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주님의 계약 궤를 이용하는 이스라엘 원로들의 태도에는 주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전쟁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교만이 엿보입니다. 명확합니다. 겸손한 나병 환자의 청원에는 가엾은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신체적인 고통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소외감에서 해방시키는 예수님의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반면, 명분 없는 전쟁에서 승리하려던 이스라엘은 대살육을 당하고, 하느님의 궤까지 빼앗기는 징벌을 받고 맙니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겸손과 교만의 두 얼굴을 본 듯합니다. 하느님인 듯하지만, 각자가 믿고 기대하는 하느님의 얼굴은 전혀 다릅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당신 얼굴을 보여 주실 것을 기대하지만, 정작 내가 원하지 않은 하느님의 말씀이나 명령 앞에서는 그분을 외면하는 것이 솔직한 우리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나’지만, 정작 그 믿음을 이끌어 주시고 지탱해 주시는 분은 주님의 성령이심을 깨닫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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