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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1.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11 조회수2,08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1월 11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제1독서 1사무 4,1ㄴ-11

그 무렵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1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

제르에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2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

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3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4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5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6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 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8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9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복음 마르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아이들의 장래희망 중에서

꽤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연예인’이라고 합니다.

 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을

동경하면서 갖게 되는

장래희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미국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재미교포

코미디언의 현재 근황을

매스컴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에

현재 미국의 요양병원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홀로 쓸쓸하게

생활한다는 것이었지요.
엄청난 인기를 가졌었던

연예인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짜릿했던 인기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만이

늘어갑니다.

그렇다면 지난 성공에 대한

만족으로 지금을

잘 살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화려했던 전성기를

잊지 못해서 향정신성 의약품을

사용하기도 하고, 또 보톡스나

성형수술에 중독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끝마치는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

그런데 한 아름다운

인물이 떠올려집니다.
그녀는 ‘로마의 휴일’,

‘타파니에서 아침을’ 등의

영화로 세계인의 요정으로

랑을 받았지요. 맞습니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1929-1993)입니다.

많은 배우들이 전성기를 잊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그녀는 특별한 삶을 선택합니다.

UN 홍보대사로 봉사하면서

생의 마지막까지 아프리카에서

굶주리고 가난한

 어린이들과 함께 보냅니다.
그녀가 이러한 선택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과

제대로 씻기도 힘든 환경은

여배우에게는 정말로 피하고

싶은 자리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그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셨던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랑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려놓을

있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모두 맡길 때 비로소

사랑의 삶이 가능합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찾아와 도움을 청합니다.

그때의 모습을 잘 보십시오.

 그는 무릎을 꿇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굳은 믿음을

드러냅니다. 바로 이때

주님께서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하시면서 그의 나병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첫째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완전히 의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주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굳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떠했을까요?

겸손도 없고 또한

믿음도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관점이 아니라

늘 세상의 관점으로만 보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관점인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보십시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과 믿음을 통해

진정한 기쁨의 삶,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천 번을 넘어질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용기를 내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리스타트! 세상엔 딱 한 종류의

 실패자들이 있는데,

이는 싸우기와 꿈꾸기와

사랑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호세 무히카

오드리 헵번.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따뜻한 하루’ 중에서)

옛날 어느 마을에 겸손하고,

착실하고, 인내심 많고 심지어

현명하기까지 한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 청년을 칭찬하고

좋아했지만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불량한 청년들이

유치한 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성을 잃고 화나게 할 수 있다

없다를 가지고

내기를 벌인 것입니다.

청년을 화나게 할 수 있다고

 한 불량배가 나섰습니다.

불량배는 청년이 목욕을

시작할 때를 노려 청년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젖은 몸을 급하게

닦고 나온 청년에게 실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 목욕 중이었어? 미안.

 그런데 내가 갑자기

금한 것이 생겨서.

저기 말이야,

사람의 머리가 둥글잖아?

그거 왜 그런 거냐?"
청년은 불량배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청년의 다시 목욕을

시작할 때 불량배가 문을

또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이를 먹으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는 거지?"
누가 봐도 일부러 곯리려는 것이

분명한 질문에 청년은 웃으면서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오히려 오기가 난 불량배는

 청년이 목욕탕에 들어갈 때마다

몇 번이고 문을 두드리며

이상한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청년은

화는커녕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불량배의 질문에 여전히

 친절하게 답해주었습니다.

결국, 내기에 진 불량배는

그 청년을 찾아가 내기에서

손해를 봤다면 말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여전히

친절한 얼굴로 불량배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그럴 일이 있었군요.

하지만 내가 인내심을

잃는 것보다 당신이

손해 보는 것이 낫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인내심을

잃고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그 모습이 분명히 좋지 못한데,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별로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인내심의 실종을 막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보면 어떨까요?

이러한 인내가 내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동창신부 어머님 장례미사로

충남 보령대천성당에 다녀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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