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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매일묵상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11 조회수2,681 추천수4 반대(0) 신고

 

 

절박함, 겸손함, 강한 믿음

 

 

예수님 시대, 나병 환자들은 가장 불행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선두 주자들이었습니다. 일단 나병 진단을 받는 즉시 철저하게도 공동체와 격리되었습니다. 적당한 치료제도 없던 당시, 그들은 성밖으로 쫒겨나 동굴이나 숲속에서 산짐승처럼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더 잘 치료받고, 더 잘 섭생을 잘 하며,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도 치유될까 말까 한데, 나병 환자들은 그 어떤 배려도 받지 못한채, 하루 하루 자신의 삶이 소멸되어가고, 순간 순간 자신의 인생이 사그라져드는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며 살았습니다. 살아있지만 죽은 그런 나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더 괴로운 일 중에 하나는 당시 나병 환자들을 바라보는 세상과 교회의 시선이었습니다. 나병은 곧 천형(天刑), 다시 맢해서 하느님의 저주로 인해 생긴 징벌이요, 병중에서도 가장 나쁜 병, 부정(不淨)한 병으로 간주하였으니, 어쩌다 병에 걸린 나병 환자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하고 펄쩍 뛸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향한 원망, 세상과 이웃을 향한 미움, 자신을 향한 화로 가득했던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병의 치유를 청하는 그의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이 참으로 각별했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그의 자세가 돋보였습니다. 예수님을 뵙자 마자 털석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코 복음 140)

 

 

치유자 예수님 입장에서 보니, 치유를 청하는 사람의 자세가 참으로 남달랐습니다. 그간 별의 별 환자들을 다 대하셨겠지요. 정식으로 청하지도 않고, 은근슬쩍 뒷쪽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치유받은 사람, 예수님의 치유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 등등.

 

 

그러나 나병 환자는 절박함, 겸손함,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강한 믿음이라는 나병의 치유를 위한 삼박자를 골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예수님 측의 큰 측은지심, 그리고 즉각적인 치유를 불러오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병환자를 대하시는 치유자 예수님의 태도가 또한 크게 돋보입니다. 비참하고 가련한 한 인간의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 발버둥 앞에 그 분의 마음이 크게 움직입니다.

 

 

그 분의 내면이 가엾은 마음, 애틋한 마음으로 가득 찹니다. 예수님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썩어 문드러진 환부에 접촉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코 복음 141)

 

 

황공스럽게도, 감지덕지하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정결하신 하느님의 손가락과 이 세상에서 가장 불결하고 비참한 한 인간의 환부가 맞닿습니다. 거기서 사랑의 기적이 시작됩니다. 한 인간이 다시금 태초의 깨끗한 상태로 다시 태어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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