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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는 건 누군가가 우리를 위하기에 /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12 조회수1,434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가을 하늘을 떼 지어 나는 기러기들 모양은 대개가 삼각형이다. 혼자 나는 것보다 이게 공기저항을 덜 받는다나. 또 상승기류로 그리 힘을 덜 드리고 더 난단다. 더군다나 맨 앞의 새는 공기저항에 쉽게 지쳐 시간을 두고 다른 새와 자리를 바꾼다. 그들은 가면서 울음소리를 내는데, 이는 서로 격려하며 특히 맨 앞 새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나. 물론 처지는 새에게는 동료 두 마리가 함께 내려와 회복되도록 돕고 회복되면 다시 대열에 합류한단다. 이렇게 기러기는 협동심과 우애가 대단히 돈독하단다.


그때에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데리고 왔다. 그 병자를 네 사람이 들것에 들었는데, 군중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데려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어, 병자가 누워있는 들것을 달아 내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3-5 참조).’

 

예수님께서 계신 집에 수많은 이가 모여들었다. 그때 네 사람이 중풍환자를 데리고 왔다. 너무 많은 이가 모였기에 그분께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붕을 벗기고 그를 내려 보낸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 그래서 살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주위의 작은 도움으로 큰 힘을 얻는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신다. 마치 기러기들이 하늘을 날아갈 때에 서로 격려하고 어려울 때에 함께하듯이.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먼저 선언하신다. 이렇게 죄의 용서를 먼저 선언하시고 치유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오셨고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권한을 가지신 분이심을 보여 주신 것이다. 더 나아가 단순히 신체의 자유를 넘어, 죄로부터 해방된 영혼의 자유를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보이시는 거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진정 우리를 치유하시기를 겸손하게 청하는지 돌아보자.

 

중풍 병자를 들것으로 데려온 이들, 그들이 그 환자의 친척인지 이웃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지붕을 뚫고라도 그 고통 받는 이를 예수님께 데려오는 믿음과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을 본다. 우리도 고통 가운데 있는 이를 도울 줄 아는 이런 작은 향기를 내는 삶을 살자. 예수님의 치유는 병자 스스로 얻을 수 없는 은총이었다. 그 이웃이 없었다면 아마도 치유 받지 못했으리라. 어쩌면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체험한 이들은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이웃이었는지도 모른다. 주는 기쁨은 받는 기쁨보다 더욱 크기에.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데려온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치셨다. 네 사람의 정성스런 믿음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그가 온전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잘나서 용서받고 의인처럼 산 것은 결단코 아니리라.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부단한 기도와 노력을 했던 것일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중풍 병자,치유,죄의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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