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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1.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13 조회수1,57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사무 9,1-4.17-19 10,1

그는 벤야민

사람으로서 힘센 용사였다.

2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사울인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3 하루는 사울의 아버지

키스의 암나귀들이 없어졌다.

그래서 키스는 아들 사울에게

 말하였다. “종을 하나 데리고

나가 암나귀들을 찾아보아라.”

 4 사울은 종과 함께 에프라임

산악 지방을 돌아다니고,

살리사 지방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들은

사알림 지방까지

돌아다녔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다시 벤야민 지방을

돌아다녔으나

역시 찾지 못하였다.
17 사무엘이

사울을 보는 순간,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내가 너에게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18 사울이 성문 안에서

사무엘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견자의 댁이

 어디인지 알려 주십시오.”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 선견자요.

앞장서서 산당으로 올라가시오.

 두 분은 오늘 나와 함께

음식을 들고,

내일 아침에 가시오.

그때 당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일도 다 일러 주겠소.”
10,1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춘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이제 당신은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그 원수들의 손에서

들을 구원할 것이오.”

복음 마르 2,13-17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인천에서만 쭉 살던 제가
서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혜화동에 있는 서울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솔직히 서울에 처음 갔을 때,
높은 빌딩과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지요.
이렇게 복잡한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특히
명동성당에 갈 기회가
자우 있었는데,
이 명동에 가면 그러한
생각은 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러한
생각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복잡한 길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고 심지어 딴 짓을
하면서도 여유롭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길이 너무 쉽고
편한 길이 된 것이지요.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한 번은 서울 신학교
동창 신부들이 인천을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곧바로
“왜 이렇게
인천 교통이 복잡하니?
사람들도 난폭운전을 하고...
이런데서 어떻게 운전을 하니?”
라고 말합니다.
제 자신이 볼 때에는 분명
서울이 더 복잡하고 차도 많습니다.
길이 막히니 운전하는데 양보를
잘 해주지 않는 것은 인천보다도
서울 같습니다.
그렇다면 동창 신부들이 반대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익숙하면 모든 것이
편하고 쉬워집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또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쉽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익숙하지 않다보니 주님과
연관된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님과 익숙한
관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 묵상 등을 특별한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할 수
 있도록 규칙적으로 해야 하며,
생활 안에서도 죄를 대하고
선을 행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면 분명히 익숙한
관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나를 따라라.”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서 제일 먼저 하신 것은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셨다고
 전해주지요.
 곧바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사명을 준 것이
아니라 그냥 먹고 마셨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들도 종종 “언제
식사라도 한 번 하시죠?”
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는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익숙한 관계가
되기 위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제자로 부른 레위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즉, 익숙한 관계가
되기 위해 함께 음식을
잡수신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와 익숙한
관계가 되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한쪽만 원한다고 해서
익숙한 관계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가 함께 노력해야 익숙한
관계에서 진정한 친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익숙한 관계
 안에서 분명히 평화와
기쁨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바너드)

서울신학교 입학식 날,

인천교구 동기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

이렇게 여행을 다닌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잊지 못할 여행이

 언제였는가를 떠올려보니

계획을 세워서 다닌 여행이

아니라 무계획으로 무작정

떠났던 여행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바다가 좋아서 한없이 바다만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있습니다.

분명히 한 것은 없습니다.

또한 특별히 본 것도 없습니다.

맛집을 찾으려고 힘들게

운전을 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냥 편안하게 쉬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보낸

시간이 더 잊지 못할

여행으로 남게 됩니다.

또한 계획 없이 떠났기에

우연히 펼쳐지는 일들 역시

 여행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하더군요.
우리들은 많은 것들을

해야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일상의 반복

안에서도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 안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사실 특별한 일이 내게

이루어지면 신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지요.

그보다는 편안함을 느끼고

작은 기쁨을 느낀다면

 이것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닐까요?
주님께 특별한 날을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의미 있는 시간을 달라고

청하면 어떨까요?

이를 위해서 일상

삶 안에서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계획이 없으면 바다만

하루종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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