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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미사강론]주님공현대축일미사 교황 강론[2018년 1월 6일 토요일(주님공현대축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14 조회수1,741 추천수2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7.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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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81 6일 토요일[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이사야서 60,1-6

화답송 : 시편 72(71),1-2.7-8.10-11.12-13( 11 참조)

2독서 : 에페소서 3,2.3.5-6

복음 : 마태오 복음 2,1-12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8571&gomonth=2018-01-07&missatype=DA

(공현 대축일을 1 6일에 의무 축일로 지내지 않는 곳에서는 1 2일부터 8 사이에 오는 주일에 대축일을 지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바티칸에서는 1 6일에, 한국 교회에서는 1 7 주일에 지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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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 at Mass on Epiphany Day in St. Peter's Basilica, 6 January 2918.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 교황 강론 : 전문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documents/papa-francesco_20180106_omelia-epifania.html

http://www.vaticannews.va/en/pope/news/2018-01/pope-francis-epiphany-mass-homily-full-text-6-january0.html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을 보기 위해서 위를 올려다 보고” “길을 떠나기 위해서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그리고 어떤 것도 보답으로 기대하지 않고아기 예수님께 그들의 예물(gifts)”을 드리는 동방박사들을 본받으라고 신자들을 초대합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

교황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성베드로대성당

2018 1 6일 토요일

 

동방박사들의 세 가지 행동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여정을 이끕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모든 민족들의 빛과 구원으로서 드러나십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별을 보고 그들은 길을 떠나고 그리고 그들은 예물(gifts)을 드립니다.

 

별을 바라봄. 이것이 시작입니다. 우리는 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왜 동방박사들만이 별을 보았을까요? 아마도 하늘을 향해 눈을 드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땅을 바라보는 것에 만족합니다. 건강, 얼마간의 돈 그리고 약간의 즐거움이 있다면 충분합니다. 나는 우리가 아직 하늘을 올려다 보는 법을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법을 알고 있습니까. 하느님을 열망하는 법, 그분께서 가져다 주시는 새로움을 기대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바람 앞의 검불과 같이 우리 자신이 삶에 완전히 휩쓸리도록 스스로를 놓아 두고 있습니까? 동방박사들은 가라 앉지 않으면서 그저 그럭저럭 살아 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진실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고귀한 목적이 필요하고 우리가 위를 올려다 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그들을 앞서 가”(마태오 복음 2,9)는 것을 본 것은 하나의 별이었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별은 눈이 부시거나 압도하지 않고 다만 부드럽게 초대합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어떤 별을 따르려고 선택했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을 것입니다. 어떤 별들은 밝겠지만 그러나 그 별들은 길을 가르키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이러한 별들이 우리 삶이 될 때 그것은 성공, , 출세, 명예 그리고 쾌락과 함께 합니다. 그것들은 별똥별들입니다. 그것들은 잠깐 빛납니다. 하지만 그토록 빨리 타버리고 그 빛들은 사라집니다. 그것들은 올바로 이끌기 보다는 잘못 이끄는 유성들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별은 압도하도록 밝지 않지만 진실로 그 별은 항상 그곳에 있습니다. 그 별은 삶 안에서 당신의 손을 잡아 주고 당신과 동행합니다. 그 별은 물질적인 보답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확고한 평화를 주고 그리고 그 별이 동방박사들에게 그렇게 해 주었던 것처럼 더없이 기뻐하게(마태오 복음 2,10) 해 줍니다. 하지만 또한 그 별은 우리에게 길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길을 떠남, 동방박사들이 했던 두 번째 행동은 우리가 예수님을 발견하려고 한다면 필수적인 본질적인 일입니다. 그분의 별은 여정을 시작할 결심을 하기를 그리고 우리의 길 위에서 지치지 말고 나아갈 결심을 하기를 요구합니다. 쓸모 없는 짐들에서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오로지 방해물일 뿐인 필요치 않은 여분들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라고 요구합니다. 우리 삶의 지도를 따라다니는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장벽들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찾는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이 발견되도록 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어나 가야 하며 빈둥거리지 말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멈춰 서지 말고 길을 떠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속적인 편안함을 주는 안락 의자를 뒤로하고 그리고 집과 난로의 안정된 따뜻함을 뒤로 하고 그분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지켜야 하는 정중한 예의범절이 아닙니다. 떠나면서 시작하는 여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탈출 가운데 그분의 백성을 해방시키시는 분이시고 새로운 민족들에게 그분의 별을 따르라고 부르시는 분이시며 항상 그리고 오로지 여정 가운데에서 자유와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 우리가 예수님을 발견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데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우리의 자기 만족을 극복해야 하고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요청하기를 거부하는 우리의 게으름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위험들은 감수하려고 노력할만한 엄청나게 큰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기 예수님을 발견할 때 그분의 다정하심과 사랑을 발견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재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길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복음은 이것을 등장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 줍니다. 임금의 탄생이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화가 난 헤로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의를 소집하고 정보를 모으려고 사람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궁전에 갇혀 있습니다. “온 예루살렘”(마태오 복음 2,3)이 두려워합니다.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새로운 일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있었던 대로 그대로 있기를 원합니다. 아무도 떠날 용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의 유혹은 더 교묘합니다. 그들은 정확한 장소를 알고 있고 고대의 예언자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그 장소를 헤로데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베들레헴을 향해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의 유혹은 신자가 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의 유혹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종교 신앙에 대해서 길게 말할 수 있지만 주님을 위해서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말을 하지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평을 하지만 선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동방박사들은 적게 말하고 여정을 많이 수행합니다. 종교의 사실들은 모르지만 그들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고 길을 떠납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오 복음 2,2). “그들은 길을 떠났다, (그들은) 들어가,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들은) 돌아갔다”(마태오 복음 9, 11, 12). 그들은 계속 나아갔습니다.

예물(gifts)을 드리기. 긴 여정 후에 예수님께 왔을 때 동방박사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대로 합니다. 그들은 선물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거기에 계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의 귀중한 예물을 드립니다. 황금과 유황 그리고 몰약. 그 삶의 여정이 내어 주는 것으로 끝날 때 복음은 현실이 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어떤 것도 보답으로 기대하지 않고 거저 주는 것.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발견했다는 확실한 징표입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오 복음 10,8) 대가를 계산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하는 것, 심지어 요구 받지 않을 때에도,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때조차도, 그것이 즐겁지 않다면 더욱 그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작아지신 그분께서는 당신의 형제 자매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우리가 내어 주기를 바라십니다. 이 가장 작은 이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보답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 굶주린 이들, 나그네들, 감옥에 있는 이들, 가난한 이들(마태오 복음 25,31-46 참조)입니다. 우리가 아픈 사람들을 돌볼 때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돕기 위해서 누군가를 도울 때 또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누군가를 용서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예물을 드립니다. 이것들은 거저 주어진 선물들이고 그리고 그것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안에서 부족해 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는 대로 하는 것(마태오 복음 5,46-47)이라고 상기시켜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손을 바라 봅시다. 너무나 자주 사랑이 없는 우리의 손. 그리고 우리가 보답으로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우리가 거저 줄 수 있는 선물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이렇게 간구합시다. “주님, 주는 것의 기쁨을 제가 다시 발견하게 하소서.”

 

2018 1 6 13 4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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