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1월 15일(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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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1-15 | 조회수1,32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1월 15일 [(녹)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말씀의초대 사무엘은 주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울에게,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고 하신다. ◎제1독서◎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말씀입니다. 15,16-23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간밤에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응답하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실지 몰라도, 머리가 아니십니까? 기름을 부으시어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완전히 없애 버려라.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일을 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끌고 왔습니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점치는 죄와 같고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50(49) 8-9.16ㄴㄷ-17.21과 23 (◎ 23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너를 벌하지는 않으리라. 너의 번제야 언제나 내 앞에 있다. 나는 네 집의 수소도, 네 우리의 숫염소도 받지 않는다. ◎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늘어놓으며, 내 계약을 너의 입에 담느냐? 너는 훈계를 싫어하고, 내 말을 뒷전으로 팽개치지 않느냐? ◎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저질러도 잠자코 있었더니, 내가 너와 똑같은 줄 아는구나. 나는 너를 벌하리라. 너의 행실 네 눈앞에 펼쳐 놓으리라. 찬양 제물을 바치는 이는 나를 공경하리라.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복음환호송◎ 히브 4,12 참조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복음입니다. 2,18-22 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들에게 이르셨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늘의묵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알릴 때마다 흔히 인용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우리는 늘 새롭게 변화하고 회심하고 싶어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나 자신이 너무 낡고 고집스러우며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육신의 배부름과 욕망에서 생긴 영의 혼탁함에서 벗어나 맑은 정신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고행을 통하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행위였습니다. 순수한 종교적 의미보다는, 이민족의 지배 속에서 유다인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는 율법의 조항이자, 사회적 계약으로 전락했고, 단식의 참된 종교적 의미도 사라져 갔습니다. ‘경건한 이들’이라고 자칭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하지 않는 것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식의 참된 의미를 되살려 주십니다. 복음의 기쁨을 누리는 이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함께 있는 기쁨을 누리는 이들에게 단식 행위는, 마치 혼인 잔칫집에 와서 음식을 함께 나누는 기쁨보다 홀로 떨어져서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사람임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독선과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이긴 뒤에 좋은 전리품의 일부를 취한 것을 두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라는 질책을 받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주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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