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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7 수/ 주님을 분노케 하고 슬프게 하는 완고함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16 조회수1,510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2주 수, 마르 3,1-6(18.1.17)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셨다.”(마르 3,5)





A man with withered hand





주님을 분노케 하고 슬프게 하는 완고함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완고해져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도(3,6) 불구하고 병으로 위축된 삶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았지요. 그러나 그들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의 치유행위는 율법을 어긴 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하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습니다(3,4). 그들은 율법에 묶여 사람을 살리고 자유와 해방을 불러일으키는 예수님의 처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질문에 입을 열지 않자 ‘노기를 띠고 그들을 둘러보시며 그들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십니다.’(3,5) 그분께서는 단순히 바리사이들을 반박하신 것이 아니라 안식일 자체를 하느님의 선과 생명이 드러나는 날로 바꾸려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완고함은 하느님을 슬프게 하고 스스로를 비참에 빠트리게 됩니다.

우리도 진리 앞에 문을 걸어 잠그고 생명과 자유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은 채 위축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습니다. 문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리는 완고함입니다. 완고한 사람은 가난하지 않고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합니다. 자기 의지는 물론 재물과 힘, 다른 사람과 세상을 자기것으로 삼으려 합니다.

완고한 사람은 온유이신 하느님 대신 육의 거칠음을 품고 자기뜻에 묶여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는 남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거나 허세를 부리며 오만하게 굴기도 하지요. 뿐만 아니라 자기 의지에 매달려 영혼의 마약과 같은 아집과 독선에 젖어 삽니다. 완고함은 치우치고 굳어진 마음과 생각에서 옵니다. 완고함은 하느님의 영과 선은 물론 다른 이들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좁고 폐쇄적인 태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를 규범 안에 가두는 완고함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좋은 일과 사람을 살리는 일이 내가 바라는 때에 내가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만 행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겠지요. 모두를 살리시려고 오신 생명의 주님을 내가 만든 꽉막힌 틀에 맞추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완고함에서 나와 더 완강한 완고함의 독소를 뿜어대는 독선, 편견, 아집, 강한 자기주장, 폐쇄적 사고는 영혼의 눈을 멀게 할 뿐입니다.

전쟁범죄국인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뻔뻔스러운 태도, 국민의 삶을 피폐케 하고 권력욕에 눈이 멀어 부패와 불의를 쌓아온 정치인들의 적반하장식 태도와 재벌들의 탐욕과 거짓은 악취나는 완고함의 덩어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영의 이끄심에 따라 가난한 교회가 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빛과 희망이 되지 못한 채 굳어 있는 교회 또한 근본적인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오그라든 영혼의 손을 펴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집단적 이기주의와 적폐를 낳는 완고함의 틀을 없애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오늘도 "일어나 가운데로 오라"(3,3)는 예수님의 말씀 따라 모두를 살리는 생명의 주님의 심장 가까이 나아갔으면 합니다. 영으로 가난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어 경청하고 받아들이며 함께할 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음을 기억하는 오늘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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