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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7.강론.“일어나 가운데 서라. 손을 뻗어라” -파주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17 조회수1,300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르 3,1-6(연중 2 )

 

 어제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며,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마르 2,28).

 오늘 <복음>도 여전히 안식일 논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는지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그들이 입을 열지 않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손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합니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 손을 뻗어라(마르 3,5).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누구일까?

 손에 무엇인가를 꼭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 가슴에 자기 뜻을 꼭 움켜잡고 있듯이, 손에 무엇인가를 꼭 움켜쥐고 있는 사람입니다. 움켜쥐고 있는 바람에 형제들과 주고받고를 못하고 있어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곧 자신의 고집 때문에 완고해져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느님과 형제들과 단절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혹 나도 지금 무엇인가를 꼭 움켜쥐고 있어 형제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그것을 언제부터, 대체 왜 손에 쥐게 되었을까?

 

 묘한 것은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손을 꼭 쥐고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분명, 에덴에서부터 쥐었습니다. ‘선악과를 손에 움켜쥐었고, 교만과 불순명과 탐욕을 움켜쥐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왜 쥐었을까?

 사실, 그것을 따먹고 높아지려 했지만, 오히려 추락이었습니다. 금단을 어기고 자유를 행사했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속박이었습니다. 욕심 부려 자신을 채웠지만, 오히려 단절과 죽음이었습니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움켜쥔다는 것은 곧 추락이요 속박이요 죽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인가를 꼭 움켜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을 가리고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 손을 뻗어라(마르 3,5)

 

 오그라든 손을 편다는 것은 움켜 쥔 것을 놓는 것만이 아니라, 손에 못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손을 뻗어 사랑을 건네주기보다 손을 뻗어 자애심과 이기심을 채웠습니다. 죄 있는 형제들에게 손을 뻗어 위로하기보다, 돌팔매질하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십자가에서 못을 받아들이시고, 구원의 피, 화해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첫 아담이 움켜쥔 손을 펴시고, 새 아담이 되셨습니다.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오,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희는 손을 펴고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움켜쥔 것을 놓고서, 손을 뻗습니다. 마음을 풀고,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서 사랑을 받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손에 구원의 못을 받아들였듯이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제 손이 당신 구원을 전해주는 손, 당신 사랑을 건네주는 손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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