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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1.2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0 조회수2,31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2사무 1,1-

4.11-12.19.23-27

그 무렵

1 다윗은 아말렉을 쳐부수고

돌아와 치클락에서 이틀을 묵었다.

 2 사흘째 되는 날,

어떤 사람이 옷은 찢어지고

머리에는 흙이 묻은 채

사울의 진영에서 찾아왔다.

그가 다윗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자,

3 다윗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물었다. 그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다윗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서 말해 보아라.” 하자,

그가 대답하였다.

“싸움터에서 군사들이

달아났습니다. 또 많은

군사가 쓰러져 죽었는데,

사울 임금님과 요나탄

왕자님도 돌아가셨습니다.”
11 그러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12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맞아 쓰러진 것을

애도하고 울며,

저녁때까지 단식하였다.
다윗이 애가를 지어 불렀다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살해되어 언덕 위에

 누워 있구나.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졌는가?
23 사울과 요나탄은

살아 있을 때에도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았구나.

그들은 독수리보다 날래고

사자보다 힘이 세었지.
24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생각하며 울어라.

그는 너희에게 장식 달린

진홍색 옷을 입혀 주고

너희 예복에 금붙이를

달아 주었다.
25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서

쓰러졌는가?
요나탄이 네 산 위에서

살해되다니!

26 나의 형 요나탄,

형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오.

형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하였고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27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지고

무기들이 사라졌는가?”

복음 마르 3,20-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미국은 우주개발 계획에 해마다

약 150억 달러를 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전환하면

16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찾기가

힘들면서 한편에서는

이 돈으로 병원이나 학교,

사회보장을 위한 기금을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비판한다고 합니다.

지금 이 지구 안에서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그렇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우주개발을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과연 필요 없을까요?
우리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환경과 자원부족문제를

가지고 있는 지구이기에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우주개발 계획에 따라

인류의 비약적인 과학기술을

발전시킨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실생활에서도

 우주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더욱 더 편하고

유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위해 막대한 교육비를 지불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교육비 쓰지 않고 그냥

지금 먹고 싶은 것 더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 모든 것들을 줄여가면서도

불구하고 교육에 쏟는 이유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그저 지금 한 순간만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를

바라보면서 지금을 열심히 삽니다.

그리고 이 기준에 맞춰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모습입니까?

혹시 지금 한 순간만을 바라보면서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붙잡으러 나섰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친척이면 더욱 더 열심히

지지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시간인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한 순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대해 “미쳤다.”

라고 단언했던 것이지요.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람의 일로만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또한 지금 한 순간의 세속적인

만족만을 따르게 된다면 주님의

모든 말씀은 헛된 것이고 미친

사람의 짓거리로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두 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모두가

 함께 사랑 안에서 행복하게

 어울려 살기 위해서도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은

너무나도 유익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길을

향해 가야 할까요?

성공한 삶이란

그 사람의 꿈과 사랑이 담긴

행복한 공간이 넓어지는 것이다.

(김이재

녹아 없어질 눈사람이라고 해서 필요 없는

것이 아니지요. 사진은 눈사람 인형.

"진정한 승자"

수탉 두 마리가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한참의 싸움 끝에 마침내

승패가 결정되었지요.

싸움에서 진 수탉은 고개를

숙이고는 어두운 구석에

 숨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싸움에서 이긴

수탉은 기고만장합니다.

자신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높은 담장 위로

날아올라가서는 힘차게

 “꼬끼오~~~~”를 외쳤습니다.
바로 그 소리를 듣고 근처를

날고 있던 독수리 한 마리가

내려와서 담장 위의 수탉을

낚아채서 날아갔습니다.

결국 암탉은

누가 차지했을까요?

이긴 수탉이 아니라,

싸움에서 진 수탉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이기고 진다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지금 한 순간은

이긴 것 같지만,

그것이 영원히 이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지금을

겸손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먼훗날 주님 안에서

진정한 승자가 될 것입니다.

자전거도로를 보니 자전거 타고 싶네요.

추워서 자전거를 안 타니...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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