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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칠레 오히긴스공원미사:프란치스코 교황 강론 전문[2018년1월16일 화]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1 조회수1,639 추천수3 반대(0) 신고

Pope Francis celebrates Mass in the O'Higgins Park in Santiago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7.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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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8116일 화요일[연중 제2주간 화요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사무엘기 상권 16,1-13


화답송 : 시편 89(88),20.21-22.27-28( 21)


복음 : 마르코 복음 2,23-28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8580&gomonth=2018-01-16&missatype=DA


(교황님께서 집전하신 미사에서 선포된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 5,1-12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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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긴스 공원 미사 :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 전문

평화와 정의를 위한 미사의 강론



http://www.vaticannews.va/en/pope/news/2018-01/chile-journey-papal-mass-o-higgins-park.html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목 방문

칠레


 평화와 정의를 위한 미사의 강론


성베드로대성당


오히긴스 공원산티아고



2018 1 16일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마태오 복음 5, 1). 오늘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이 첫 번째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만나고 싶어 하시는지, 하느님께서 항상 그들의 백성을 놀라게 하시는 방식(탈출기 3,7 참고)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첫 번째 일은 그분 백성의 얼굴을 보시고 살펴 보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얼굴은 하느님의 본능적인 애끓는 사랑을 깨웁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사상이나 관념으로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얼굴들, 사람들로 움직이십니다. 성부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생명을 달라고 울부짖는 삶에 의해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셨을 때 그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보셨고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군중들이 예수님의 눈빛 안에서 자신들의 열망과 염원의 울림을 그들 자신으로서 만난다는 것입니다. 이 만남이 여덟 가지 참행복의 선언이 있게 하고 우리가 떠나도록 부름 받아 도전 받으며 따라가는 저 지평선이 있게 합니다. 여덟 가지 참행복은 현실에 직면한 수동성의 열매가 아니며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우울한 통계를 모으는 단순한 방관자의 열매도 아닙니다. 그 열매들은 오로지 실망 낙담을 퍼뜨리고 싶어하는 저 죽음의 예언자들의 산물이 아닙니다. 한번의 클릭으로, 눈 깜빡 할 사이에 행복을 약속하는 저 신기루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참행복은 예수님의 연민 어린 마음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의 연민 어린 마음은 행복의 삶을 추구하고 열망하는 남자와 여자들의 마음을 만납니다. 고통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남자와 여자들, 자신들의 발 밑에서 땅이 뒤흔들리는 혼돈과 고통 또는 일평생의 일이 수포로 돌아갈 때 꿈이 쓸려나가는 것을 보는 혼돈과 고통을 맛본 적이 있는 남자와 여자들. 그러나 계속 해 나가기 위해서 견디고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도 또한 아는, 자신들의 삶을 다시 세우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남자와 여자들 


칠레 국민들의 마음은 재건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요! 너무나 많은 몰락 후에 다시 일어나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핵심입니다. 그것이 여덟 가지 참행복이 의미하는 핵심입니다! 


여덟 가지 참행복은 위선적인 태도의 산물이 아닙니다. 또한 모든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헌신하려고 하지 않고 그래서 우리 공동체와 우리 삶 안에서 변화와 화해의 과정을 만들어 내는 모든 기회를 막아 버리고 마는 사람들의 싸구려 말들의 산물도 아닙니다. 여덟 가지 참행복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자비로운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새로운 날, 타성을 몰아내고 지쳐 버린 피곤함과 부정적인 마음을 떨쳐 내는 것으로서 희망을 경험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파블로 네루다, El habitante y su esperanza, 5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에게 행복하다고 선포하시면서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변화시키는 힘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우리 형제 자매들 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과 버림 받은 이들 안에서 더 이상 신앙을 갖지 못하는 이들을 마비시키는 타성을 몰아내기 위해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참행복을 선언하시면서 우리를 뒤흔들어 저 부정적인 마음을 버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소비주의로 우리 의식을 마비시키면서 우리 문제들로부터 도망치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피하면 그리고 우리의 안락한 현실 속에 숨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도록 만드는 체념 의식을 몰아 내십니다.


참행복은 미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 그들은 계속 꿈꾸고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영에 의해 어루만져지고 파견되도록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저 새로운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산에서 오신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 일인지요너는 행복하다, 정말로 행복하다, 그리고 너, 그리고 너.

네가 하느님의 영에 의해 움직인다면 네가 저 새로운 날을 위해 저 새로운 칠레를 위해 일

하고 싸운다면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오 복음 5,9)

 


부정적인 불온한 흐름처럼 우리의 가장 깊은 관계들을 위태롭게 하고 우리를 갈라 놓는 체념에 맞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해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다른 사람들이 평화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자신의 손을 더럽힐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분열의 씨를 뿌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바로 그것이 참행복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되라고 우리를 어떻게 가르쳐 주는지 보여 줍니다. 그 참행복이 우리에게 화해의 영을 위한 훨씬 더 훌륭한 자리를 우리 가운데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당신은 복되기를 원합니까? 행복하기를 원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당신은 평화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평화를 위해 일하십시오.

 


여기서 나는 산티아고의 위대한 주교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떼

데움(Te Deum, 사은찬미가:역주)에서 한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정의를 위해 일하십시오”… 누군가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또는 정의란 단순히 훔치지 않는문제인지 묻는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다른 종류의 정의가 있다고 말해 줄 것입니다. 즉 모든 남성과 여성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 정의”(Cardinal RAÚL SILVA HENRÍQUEZ, Homily at the Ecumenical Te Deum, 18 September 1977)


가까움, 친밀함으로 평화의 씨앗을 뿌리기! 우리들의 집에서 나옴으로써 사람들의 얼굴을 봄으로써, 그리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길을 떠남으로써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해온 누군가를 이 땅의 소중한 아들 딸로서 만나기 위해서 길을 떠남으로써. 이것이 흐트러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우리가 평화의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큰 잘못이나 미묘한 잘못들을 극복하는 것이 자주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이름을 얻으려고권력에 대한 욕망에서 생겨난 야망을 극복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 자신이 중요해지려는 욕망을 극복하는 일이 자주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단지 나는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베르토 우르따도(Alberto Hurtado) 성인이 이렇게 말하고는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잘못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나쁩니다.” (Meditación radial, April 1944)


평화를 이루는 것은 우리를 불러 모으는 과정이고 우리가 우리 이웃을 낯선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처럼 바라보지 말고 이 땅의 아들, 딸로 바라보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우리의 창의성을 활발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님께 우리 자신을 맡깁시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님께서는 Cerro San Cristóba에서 이 도시를 바라보시고 동행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참행복의 영을 열망하고 살도록 도우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이 도시의 모든 곳에서 부드러운 휘파람 소리같이 이렇게 듣게 될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오 복음 5,9)

 


2018 116 14 4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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